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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도 치콜리니(1925~2015) 타계, 전설이 된 피아노 노객
긴 생애 동안 변함없이 지켜온 수채화 같은 그의 음악
글 김주영(피아니스트) 3/1/2015 |   지면 발행 ( 2015년 3월호 - 전체 보기 )



알도 치콜리니(1925~2015) 타계, 전설이 된 피아노 노객

긴 생애 동안 변함없이 지켜온 수채화 같은 그의 음악


▲ ⓒBernard Martinez

세상은 내게 공평한가, 아니면 불공평한가? 종교인이 아닌 이상 이 질문에 초연하기는, 아니 늘 똑같은 답을 내리기는 힘들 것이다. 주변에서 만나게 되는, 나보다 조금 더 잘나가고 앞서 있는 듯한 사람이 가끔씩 좋지 않은 일에 부딪힐 때나 ‘역시 인생은…’을 운운하며 공평함을 따지게 되는 것 같다고 우선 고백해야겠다.
어려움이나 고민 없는 삶은 없을 것이다. 산이나 외딴섬에서 혼자 지낸다고 희로애락이 없을까. 일찌감치 자신의 천직을 찾고 건강하게 천수를 누렸다면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행복한 인생이었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이탈리아의 피아니스트 알도 치콜리니(1925~2015)는 타고난 건강과 자기 관리로 생의 마지막까지 흔들리지 않는 연주자의 모습을 유지했고, 긴 시간 동안 무대와 교단을 오가며 자신이 펼치고자 하는 피아니즘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복 받은 인물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된다.

행복한 피아니스트
나폴리 태생인 알도 치콜리니는 열성적인 음악 애호가였던 양친의 영향으로 네 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해 이내 천재성을 드러냈고, 아홉 살에 당시 나폴리 음악원장이던 작곡가 프란체스코 칠레아의 특별 허가로 음악원에 들어가 페루치오 부소니의 제자였던 파올로 덴차를 사사했다. 치콜리니는 학교를 졸업한 22세부터 모교의 교수로 일했으나, 2년 후인 1949년 롱 티보 콩쿠르에서 파울 바두라 스코다·피에르 바르비제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본격적인 연주자의 길로 들어선다. 이듬해 그는 카네기홀 공연으로 성공을 거두고, 그 후 샤를 뮌슈/보스턴 심포니와 협연해 국제적인 명성을 높이게 된다.
1969년,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 치콜리니는 곧바로 파리 고등국립음악원의 교수로 일하며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들을 길러냈다. 1970년부터 1988년까지 그가 교수로 일한 시기는 연주와 교육 양면에 있어서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는데, 장 이브 티보데·아르투르 피자로·니컬러스 안겔리치·프란체스코 리베타 등을 키워내는 동시에 EMI 클래식스 레이블을 통해 후기 낭만을 중심으로 한 레퍼토리로 다수의 음반을 출시했다.
여기까지가 ‘행복한’ 피아니스트 치콜리니의 프로필이다. 하지만 부럽다 못해 시기심이 생길 정도로 그가 지니고 있던 복은, 다름 아닌 타고난 피아니스트로서의 능력이다. 피아니스트로서 그다지 넉넉하지 않은 체구임에도 매우 합리적인 주법과 누구든 무리 없이 다가설 수 있는 친근한 음악적 기질을 지니며, 라틴 민족 특유의 외향적이고 명랑한 자세로 ‘듣기 좋은’ 피아니즘을 구사한다는 점은 참으로 경외심이 생기는 부분이다.
그가 1961년부터 1971년까지 음반으로 내놓은 리스트의 ‘순례의 해’ 전집과 ‘사랑의 꿈’ ‘전설’, 두 개의 발라드 등은 아직까지 그 경쟁자들을 찾기 힘든 결정적인 음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넉넉한 호흡과 당당한 비르투오시티가 느껴지는 남성적 매력, 둥글고 부드러운 음상 속에 숨어 있는 사색적 요소, 적절히 풀고 조이는 긴장감의 연출까지, 치콜리니의 리스트 해석은 화려함보다는 깊은 내공으로 번쩍이는 독특한 것이었다.
아직도 어지간한 애호가들에게 치콜리니의 이름은 에릭 사티의 작품과 함께 회자된다. 리스트의 후기 작품에서 묻어나는 우아함과 현대적 세련미는 사티의 전위적 암시와 은유에 기적과도 같이 잘 어울렸다. 1960년대 중반의 녹음 중 ‘짐노페디’나 ‘그노시엔느’ 등 유명 작품보다 ‘바싹 마른 태아’나 모음곡 ‘스포츠와 유희’처럼 조금 더 낙천적인 묘사곡에서 치콜리니의 기질이 더욱 빛을 발하는 듯 보인다. 이와 분위기는 많이 다르지만, 프랑스적 명연기의 극치를 보여주는 생상스 피아노 협주곡 전집은 세르주 바도가 지휘한 파리 오케스트라의 명민한 서포트와 함께 그의 대표작에 들어간다.

묵묵히 걸어온 자신만의 길
욕심 없이 편안한 작업을 한 탓인지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치콜리니가 지금껏 활동했던 모든 피아니스트 가운데 가장 많은 레코딩 작업을 한 인물 중 하나라는 점이다. 모차르트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사이클도 오래전에 완성해놓았다. 특히 2000년 이후 재발매한 베토벤 음반은 특유의 솔직 담백한 성격과 밝은 음색으로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정통 독일파의 그것은 아니더라도 선배 격인 이브 나트와 비슷한 연배인 에리크 하이드시크 등과 비교해 감상해볼 만하다. ‘열정’ 소나타는 미묘한 음영의 변화를 세련된 기법으로 마무리하고 있으며, 후기작 중 즐겨 다룬 피아노 소나타 31번에서는 달관의 모습이 느껴지는 맑은 서정성이 매력적이다.

치콜리니가 2002년에 수상한 디아파종상은 묵묵히 성실하게 자신의 세계를 갈고닦아온 원로에 대한 음악계의 보상이었다고 생각된다. 수상작 중 하나였던 야나체크의 피아노 음악 모음집은 지금까지의 치콜리니가 들려주지 않았던 생경한 음색과 기복이 심한 다이내믹이 이색적인 호연이었다. 굵은 터치와 청정한 음색을 동시에 구사하며 모라비아 지방의 이국적 색채를 자아낸 ‘안개 속에서(In the Mist)’와 ‘숲이 무성한 샛길에서(On an Overgrown Path)’ 등이 뛰어났다. 

80대에 들어선 피아노의 노객은 모든 것에서 홀가분하게 자유로워지고 더욱 젊어진 모습이었다. 라 돌체 볼타 레이블에서 발표한 소품집과 모차르트·클레멘티 소나타 등의 음반은, 자신의 음악적 자산을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결코 흔들림 없이 간직했던 대가의 모습에서 흐뭇함과 숙연함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음반이다. 샤브리에와 쇼팽, 시벨리우스 그리고 젊은 시절부터 그가 깊은 애정을 지녔던 마스네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왈츠 작품을 모은 음반은, 조금씩 자연스레 손끝에서 묻어나는 센티멘털한 정서와 편안함을 주는 뉘앙스의 처리가 뛰어나다. 모차르트와 클레멘티의 작품을 함께 담은 음반에서는 의외의 유창한 기교가 놀라움을 전하며, 파우제와 페르마타의 교묘한 연출을 통해 깔끔하고 단아한 고전미를 개성적으로 그려낸다.

글 김주영(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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