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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임선혜
나의 아름다운 가치 사전
글 김선영 기자 2/1/2015 |   지면 발행 ( 2015년 2월호 - 전체 보기 )

임선혜   

나의 아름다운 가치 사전

우리는 사는 동안 다양한 선택의 기로에 선다. 매 순간 선택이 이뤄지고, 그 과정이 반복되는 동안 내면에는 자신도 미처 몰랐던 가치가 포개지고 선명해진다. 이렇게 모인 가치는 종류도 색도 다양하다. 누군가에겐 용기와 도전이 선명해지고, 감사와 나눔이 짙어지기도 한다


그동안 ‘객석’은 임선혜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고 답을 들어왔다. 유럽의 여러 무대에서 발탁된 순간, 오라토리오와 오페라 무대를 동시에, 또 자유롭게 유영하는 레퍼토리와 배역에 대한 이야기, 그녀와 함께한 필리프 헤레베헤나 르네 야콥스 같은 고음악 거장들의 취향과 작업 스타일까지… 대부분 ‘무엇을 하는’ ‘어디에 있는’ 임선혜에 늘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지난 15년간의 기록을 살피면서 떠오른 다른 궁금증은, 어찌 보면 단순했다. 자세히는 그녀를 둘러싼 선택, 그 선택의 지점에서 인간 임선혜가 길어 올린 인생의 가치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그녀는 무엇을 따라 지난 시간을 건너왔을까. 어디에 시선을 두고 앞으로 주어진 길을 걸어갈까. 지나온 15년과 다가올 15년, 그 경계에 마주 선 임선혜에게 시간을 묻고, 가치를 들었다.


재능과 용기, 꿈이 만들어낸 시간

‘임선혜 행운아. 첫 데뷔를 필리프 헤레베헤와 하다니!’

2014년 겨울, 우연히 다시 펼친 15년 전 그녀의 일기장엔 그날의 흥분과 감동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1999년 12월, 필리프 헤레베헤가 지휘하는 모차르트 C단조 미사 무대 공연 전날, 대타 제안을 받은 임선혜. 불러본 적은 없지만 “무조건 할 수 있다”는 쪽을 택한 이후 임선혜의 시간은 자신조차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흘러갔다.

카를스루에부터 브뤼셀로 향하는 새벽 기차 안에서 7시간 내내 악보를 달달 외우고, 도착하자마자 노래를 불렀다. 이날 그녀가 공연을 성공적으로 해낸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일화. 공연 직후 헤레베헤는 임선혜에게 열흘 후인 2000년 1월 3일에 열릴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무대에서 모차르트 콘서트 아리아를 부를 수 있겠느냐는 제안을 한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임선혜의 공식 데뷔 무대가 된 그날의 무대는 헤레베헤가 이미 예정된 소프라노와의 계약을 파기하면서까지 그녀를 택한 것이었다. 그럼, 잠시 시침을 뒤로 돌려 임선혜가 음악을 처음 시작한 시기로 돌아가보자.

“저는 조수미 선생님을 보면서 대학에 간 세대예요.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당시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1학년 때 전국 콩쿠르에 나가 상도 받고 MBC TV ‘우리들의 노래’에 나가선 2등을 했죠. 고등학교 2학년 때 진로를 정해야 한다기에, 제 친구를 레슨해주시던 최대석 선생님을 찾아갔는데 저를 보시곤 ‘꼭 노래해야 하는 목소리’라고 하셨죠. 그때 성악을 해야겠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남보다 시작이 많이 늦었죠. 목소리가 좋은 어머니도 성악을 전공하지 않은 걸 후회하셨다며 적극 응원해주셨어요. 서울대 음대에 진학해선 음악가로서 고민이 많았어요. 내 길이 맞나 싶기도 했고요. IMF가 터진 1998년 졸업했고, 독일 정부가 장학생 한 명을 선발하는데 뽑혀 유학 생활을 하던 중 헤레베헤에게 발탁이 되었죠.”

독일 카를스루에 유학 온 지 1년 남짓. “그땐 헤레베헤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지도 몰랐다”던 스물셋 임선혜에겐 무모할지언정 그것을 해내는 재능과 욕심, 용기가 있었다. 헤레베헤는 첫 공연에서 그녀의 가능성을 알아챘고, 아마 이때부터 임선혜와 함께 그릴 여러 그림을 스케치했으리라. 이후로도 당시 유명 성악가들의 개인사정으로 콘서트 대타가 필요할 때면 하루 이틀 만에 곡을 마스터한 임선혜가 그 자리에 나서며 서서히 이름을 알렸다.

사실 1999/2000 시즌 프랑크푸르트 오페라에서 ‘피가로의 결혼’ 바르바리나로 데뷔할 때만 해도 그녀는 운이 좋아 유럽에서 데뷔했다는 생각이 컸다. 스스로도 이렇게 2~3년 하다 말겠지, 동양에서 온 조그만 여자애를 누가 신경이나 쓰겠나 싶었다. 장학금을 받아 독일까지 왔으니, 일단 여기선 어떤 음악을 하는지 보자는 마음도 있었다. 성악을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만둘 ‘깡’이 없었다. 그럼에도 유명 연주자와 한 무대에 설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깡’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누군가 제 커리어를 두고 ‘끼’ ‘깡’ ‘꿈’이라 말해줬는데, 그 말이 참 마음에 들어요. 이 세 개가 조화를 이루면 훌륭한 무대를 만들 수 있죠. 끼가 있다고 신중함 없이 달려들다가 꽃이 일찍 피고, 빨리 질까 봐 항상 신중했어요. 남에게 쓴소리를 듣기 싫은 완벽주의자 같은 성격도 있죠. 끼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늘 고민했는데, 깡으로 이어가다 보니 그게 결국 꿈이 됐어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재능과 용기 그리고 꿈이 만들어낸 조합과 타이밍이 그녀를 지금의 자리로 이끈 듯 보였다. 하지만 정작 임선혜는 ‘용기’ 대신 ‘의심’과 ‘호기심’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어떤 작품이 저와 맞는지 생각할 때 남들이 제게 ‘잘할 수 있는 역할이다’라고 말해주면 그제야 자신감이 생겨요. 누군가의 믿음이 제겐 용기가 되는 거죠. 어릴 적 부모님이, 선생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말이에요. 제가 아무리 좋아도 타인의 객관적 시선이 없으면 스스로 끊임없이 의심해요. 의심이 많으니 호기심도 많을 수밖에요. 그래서 결정해야 하는 순간엔 나 자신을 테스트하고 싶은 마음도 들어요.”

홀로 또 같이, 노래하며 호흡하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과 가능성에 대한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따라간 임선혜. 지금 그녀는 유럽 음악계 동료들과 평론가, 대중이 아끼고 사랑하는 프리마돈나다.

그녀의 초창기 스케줄을 보면 콘서트 투어 70%, 오페라 30% 정도였지만 점차 이름이 알려지면서 오페라 횟수가 늘었다. 무엇보다 르네 야콥스와 일한 지 2년 만인 2006년 스위스 인스브루크 고음악 페스티벌과 이후 독일 바덴바덴 페스티벌에서 ‘돈 조반니’의 체를리나로 무대에 오른 것이 유럽 전역에 생방송되면서 그녀의 커리어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큰 규모의 투어 이후 음반과 DVD가 발매됐고, 연출가 사이에 뿌리 내린 ‘동양인은 연기를 못한다’는 선입견도 씻어냈다. 이때를 계기로 한국에서도 임선혜의 활약상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르네 야콥스와 임선혜의 ‘돈 조반니’는 올해 5월 독일·프랑스·스페인·중국에서 공연한다.

지금까지 그녀의 활동을 음반과 영상 기록물 중심으로 헤아려보면, 최근에 나온 솔로 음반을 제외하고도 20종이 넘는다. 하나하나 헤아리고 있노라면 콜로라투라와 리릭 그리고 시대를 종횡하는 스펙트럼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디스코그래피는 고음악 레퍼토리. 바흐의 B단조 미사나 ‘마태수난곡’ ‘요한수난곡’, 하이든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나 칸타타, 포레 ‘레퀴엠’에서 임선혜는 홀로 또 거대한 앙상블의 일부로 호흡하며 빛을 발한다. 오페라에선 어떤가. 르네 야콥스와 함께 작업한 모차르트 오페라를 중심으로 살피면 첫 녹음인 ‘티토 왕의 자비’에서 진보적인 여성 세르빌리아로 분해 왕의 청혼을 거절하고, ‘돈 조반니’에선 깜찍하고 귀여운 시골 처녀 체를리나가 되어 돈 조반니를 농락한다.

이후 ‘이도메데오’에선 체를리나보다 훨씬 성숙한 캐릭터인 트로이 공주 일리아로 나섰고, ‘가짜 여정원사’에선 상반된 성격의 세르페타와 비올란테를 동시에 소화해냈다. 러닝타임이 4시간이 넘는 ‘아그리피나’에서 맡은 포페아는 아리아만도 10곡이 넘는다. 시대를 훌쩍 넘어 파리 가르니에 극장에서 공연한 피나 바우쉬 안무의 글룩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만프레트 호네크/피츠버그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말러 교향곡 4번에 이르기까지, 음반뿐 아니라 미처 나열하지 못한 공연 기록까지 살피고 나면 과연 이 모든 것을 해낸 것이 임선혜 한 명이 맞는지, 아니면 임선혜 안에 이토록 많은 자아가 존재하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그녀의 자세한 디스코그래피는 커버스토리의 마지막 페이지에 실었다).

무엇보다 필리프 헤레베헤·르네 야콥스·헬무트 뮐러 브륄·시히스발트 카위건·이반 피셔·만프레트 호네크 등 세계적인 거장들이 이끈 각기 다른 자리에서 그녀는 자신만의 빛깔을 찬란하게 채색해냈다. 오르기도 어렵지만, 지키기는 더 어렵다는 유럽 정상의 무대에서 거장들의 러브콜을 받는 그녀. 그렇다면 거장들은 왜 임선혜와 작업하고 싶어 할까? 이에 대한 답을 지난해 출간한 르네 야콥스의 자서전을 통해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가수들 중에는 노래만 잘하는 게 아니라 연기도 잘해서 배역과 그 자신이 하나 되는 가수가 있다. 임선혜와 스테판 드구, 그 둘은 가수이자 연기자다.”

임선혜의 이름을 가장 먼저 각인시키고 명성을 안긴 장르는 고음악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그녀는 “바로크 음악을 다 알지도 못하고, 바로크 외에도 하고 싶은 게 많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그녀가 고음악을 택했다기보다는 고음악으로부터 선택을 받았다는 것. 사람들이 그녀를 ‘바로크 스페셜리스트’라 부를 때도 그녀는 스스로 그 수식어를 거부했다.

“누군가 정해놓은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어요. 전 고음악 외에도 슈베르트나 말러, 쇤베르크를 불러왔고, 지금도 마찬가지죠. 저처럼 새로운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어느 하나에 한정되길 원하지 않아요.”

재능뿐 아니라 ‘취향’에 따라서도 가수의 커리어는 달라진다. 다르게는 ‘갈망’이라 표현할 수도 있겠다. 어떤 이는 다른 무대 연출 없이 순전히 눈빛과 목소리로만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콘서트를, 또 어떤 이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아래 노래뿐 아니라 연기로 확실하게 각인되는 오페라를 선호한다. 그렇다면 임선혜는 어떨까.

“남의 인생을 살아보는 것에 대한 호기심 덕에 연기하는 즐거움이 커요. 그 사이에 잠재의식을 다 꺼내볼 수 있죠. 그래서 오페라 무대를 버릴 수가 없어요. 그런데 외적으로 보여주고, 홀로 주목받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장 낮은 곳에 내려놓게 하는 것이 콘서트고, 오라토리오예요. 정제된 자세로 연기와 노래만 해야 하죠. 화려함 없이 고요하게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점이 좋아요. 겸손만 강조하면 음악적 끼가 부족해지고, 외향적인 것만 좇으면 음악적 깊이가 떨어지죠. 서로 다른 무대를 오가면서 이 두 가지를 균형 있게 갖출 수 있었고, 좋아하게 됐어요.”

나눔, 삶이 곧 노래가 되길

2008년 6월, 임선혜는 한국에서 첫 리사이틀을 가졌다. 프로가 된 후 그녀가 잘하던 가곡을 많이 못 부르는 걸 안타까워하던 그녀의 스승들(최대석·박노경·롤란트 헤르만)을 위해 슈베르트·슈만·R. 슈트라우스·리스트 그리고 한국 가곡과 빌라 로보스 등 스승과 제자가 좋아하는 작품을 각각 골라 선보였다. 당시 ‘객석’에 실린 리뷰 말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있다.

‘실력과 인간됨의 양면에서 사랑을 받아야 할 예술가가 탄생했다. 이런 존재라면 귀하게 여길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스스로 지난날을 회상해보면, 타인에 대한 질투가 피어오르고 마음의 평정을 지킬 수 없을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혼자 달리는 것보다 남들과 함께 달리는 것이 낫다”는 서울대 재학 시절 스승 박노경의 말이 그녀의 마음을 지켜줬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니 그녀의 마음뿐 아니라 귀 기울이는 소리도 달라졌다. 결정적 계기는 2002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두 달 만에 오른 무대에서였다. 이전에는 동료들의 단점만 들리던 그녀의 귓가에, 가슴을 울리고 감동시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같은 음악가로서 무대에 서 있는 이 자리가 얼마나 감사한지 느끼며, 이들과 함께하는 음악으로 인해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녀의 삶이 곧 진심어린 노래가 됐다. 더불어 타인의 인생에도 음악이 더해지는 즐거움을 적극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그녀의 이름을 걸고 2009년부터 시작한 ‘희망나눔콘서트’다.

“부모님이 천주교 봉사 단체에서 인연을 맺으셨어요. 어릴 땐 삼남매 모두 부모님 손에 이끌려 틈이 날 때마다 빈민촌 봉사를 다녔죠. 누군가 도움을 요청하면 한밤중에라도 달려가 돕는 부모님의 모습이 마음 한구석에 크게 남아 있었어요. 그래서 신부님이 개런티 없이 음악회를 여는 것을 제안하셨을 때 주저함이 없었죠. 평소 음악회를 잘 찾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구성하다 보니 제가 해설까지 맡게 됐어요.”

한 무대에서 노래와 해설을 같이 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에도, 어린 시절 아나운서를 꿈꾼 임선혜는 둘 다 즐겁게 해낼 수 있었다. 노래뿐 아니라 직접 해설까지 하는 음악회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면서, 그녀의 재능을 ‘기부’하길 원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한국 사회에서 ‘재능 기부’는 대개 ‘예술’ 분야에 요구되는 편이죠. 예술가가 직업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한 현실에서, 일방적 ‘기부’를 요구하는 분위기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재능 기부’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아요. 대신 재능을 나눌 수는 있어요. 여기엔 재능을 가진 사람에게 결정권이 있고, 그 재능을 받을 사람과 협의해야 한다는 전제가 따르죠.”

‘희망나눔콘서트’는 2013년부터 찾아가는 음악회로 그 성격을 달리하면서 이제 1+1 콘서트가 됐다. 콘서트를 원하는 곳에서 신청을 받아 생긴 수익금으로, 거동이 불편하거나 생계 활동으로 시간을 낼 수 없어 오고 싶어도 못 오는 이들에게 직접 찾아가 공연을 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간접 후원자가 자연스럽게 생기고, 음악회를 통한 선순환 고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 취지로 지난해에는 경기도 안산에 있는 한 성당을 찾았다. 세월호 사건으로 친구를 잃은 중·고등학생들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아이들과 함께 밴드를 만들어 음악회를 열었다. 아이들과 만나는 내내 세월호의 ‘ㅅ’도 꺼내지 않으려 신경 썼다. 뜻있는 연주자를 섭외해 일대일 멘토를 붙여주고, 음악을 함께 익히면서 아이들의 가슴속 응어리도 조금씩 풀려갔다. 아이들에게 좋은 선물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함께 부른 노래를 온라인 음원사이트에도 띄웠다.

“아이들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제 노래를 들려줬어요. 아이들은 그게 무슨 곡인지, 제가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몰랐지만 그 순간 진심으로 듣고, 정말 좋아해줬어요. 그때의 울림이, 함께 보낸 시간이 제겐 지쳐 힘들 때 꺼내 쓰는 ‘전투비상식량’과도 같아요. 다만 그렇게 아이들을 들뜨게 해놓고 제 스케줄 때문에 독일로 달음박질쳐야 하는 상황이 너무나 미안하죠.”

그녀는 음악가로 살기 이전에, 음악가로 사는 동안, 음악 이외의 삶을 발견하는 시야를 갖게 해준 부모님에게 늘 감사한 마음이다. 그저 노래만 열심히 연습해서, 음악만 잘하는 건 그녀에게 더 이상 큰 의미가 없다. 남들처럼 기쁨과 슬픔을 경험하고 그것을 무대 위에서 진정성이 담긴 울림을 전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그녀가 노래하는 이유다.


▲ 의상 협찬 Dress Phoebe 헤어 메이크업 권정수·김이슬(CARA′di)

도전과 모험, 오늘과 내일의 경계에 서서

2015년은 임선혜가 유럽 무대에 정식으로 데뷔한 지 꼭 15주년이 되는 해다. 소프라노의 전성기를 생각해볼 때,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의 경계를 지나는 시점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수동적인 15년이었던 것 같아요. 데뷔하고 처음엔 한 2년 정도 있으면 잊히지 않을까 염려하던 시기, 그러다 계속되니 이것만 하다가 정작 내가 하고 싶은 건 아무것도 못하지 않을까 의심하던 시기,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고 싶지만 그럴 용기가 없던 시기도 있었죠. 그러다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일이 다시 재밌어졌어요. 심적으로 힘든 시기엔 딱 2년만 버텨보자고 마음먹었어요. 그렇게 매번 마지막이라 생각하면서 무대에 올랐는데 그러면서 계속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무대를 만났고, 또 일 자체를 즐기게 됐어요. 그렇게 쉬지 못하고 달리다 정신을 차리니 문득 15년에 가까워진 거죠.”

그 말을 듣고 있노라니 최근 발매한 임선혜의 첫 솔로 음반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학구적인 레퍼토리와 음악가를 까다롭게 택하기로 유명한 프랑스의 고음악 레이블 아르모니아 문디에서 처음으로 택한 한국인 소프라노인 그녀가 처음 내놓은 독집이기도 하다. 오는 3월 전 세계 동시 발매를 앞두고 지난해 한국 팬에게 먼저 선보였다. 베른하르트 포르크가 지휘하는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가 함께 참여한 가운데 ‘오르페오 칸타타’를 주제로 페르골레시·라모·스카를라티 등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바로크 작곡가들의 오르페오와 관련된 칸타타를 한데 모았다. 이 연주를 한국에서는 오는 10월 3일에 LG아트센터에서 직접 들을 수 있다.

인터뷰 말미, 다가올 15년을 내다보며 임선혜는 새로운 ‘도전’을 되새겼다. 이젠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주도적으로, 용기를 내어 하겠다는 마음이기도 하다.

“스스로 확신할 수 있다면 굳이 남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하지만 해낼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도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따지면서 자만하면 ‘욕심’이 돼요. 반면 잘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것으로 손익분기점을 따지는 것이 아닌 그 이후의 변화된 모습을 궁금해하며 움직인다면 그건 ‘도전’이겠죠. 이젠 누가 뭐라던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면서 살 거예요. 이건 ‘자신감’이라기보다는 ‘모험심’이라 말하고 싶어요.”

사진 박진호(studio Bob)


임선혜

디스코그래피


유럽 데뷔 이후, 지난 15년 간 쌓아온


한 소프라노의 기록


▲ 하이든 ‘작곡가를 빛낸 가문, 가문을 빛낸 작곡가’ 임선혜·요하나 슈토이코피(소프라노)/막스 치올레크(테너)/안드레아스 슈페링(지휘)/카펠라 콜로니엔시스 오케스트라/쾰른 보컬 앙상블 Harmonia Mundi HMX 2961765

▲ 헨델 ‘시로에’ 요하나 슈토이코피·임선혜(소프라노)/안할렌베리 (메조소프라노)/군터슈미트(카운터테너)/제바스티안 노아크(바리톤)/팀 데 용(바리톤)/안드레아스 슈페링(지휘)/카펠라 콜로니 Harmonia Mundi 0794881735228

▲ 바흐 ‘B단조 미사’ 임선혜(소프라노)/마리안네 시엘란드·안 할렌베리(메조소프라노)/마르쿠스셰퍼(테너)/ 헬무트 뮐러 브라흐만(베이스바리톤)/드레스덴 체임버 콰이어/헬무트 뮐러 브륄(지휘)/쾰른 체임버 오케스트라 | Naxos 8.557448-49


▲ 하이든 ‘천지창조’ 임선혜(소프라노)/얀 코보브(테너)/하노 뮐러 브라흐만(베이스바리톤)/안드레아스 슈페링 (지휘)/카펠라 아우구스티나/쾰른 체임버콰이어 Naxos 8.557380-81

▲ 모차르트 ‘티토 왕의 자비’ 마크 패드모어(티토)/알렉산드리나 펜다찬스카 (비텔리아)/베르나르다 핑크(세스토)/마리 클로드 샤퓌(안니오)/임선혜(세르빌리아)/르네 야콥스(지휘)/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RIAS 실내합창단 Harmonia Mundi HMC 90192324

▲ 모차르트 ‘돈 조반니’ 요하네스 바이서(돈 조반니)/마르코스 핑크 (레포렐로)/알렉산드리나 펜다찬스카(돈나 엘비라)/베르너 귀라(돈 오타비오)/임선혜(체를리나)/ 르네 야콥스(지휘)/인스브루크 페스티벌 합창단 Harmonia Mundi HMD 990901314


▲ 모차르트 ‘마술피리’ 다니엘 벨레(타미노)/마를리스 페터젠(파미나)/다니엘 슈무츠하르트(파파게노)/임선혜(파파게나)/안나크리스티나 카폴라(밤의여왕)/마르코스 핑크(자라스트로)/르네 야콥스(지휘)/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RIAS 카머콰이어 Harmonia Mundi HMC 90206870

▲ 글룩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마리아 르크카르다 베셀링(오르페우스)/율리아 클라이터(에우리디체)/임선혜(아모르)/토마스 헹겔브로크(지휘)/발타자르 노이만앙상블&합창단/ 파리 오페라 발레 | Bel Air Classiques BAC 444

▲ 모차르트 ‘이도메네오’ 리처드 크로프트(이도메네오)/베르나르다 핑크(이다만테)/임선혜(일리아)/알렉산드리나 펜다찬스카(엘레트라)/르네야콥스(지휘)/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RIAS 카머콰이어 Harmonia Mundi HMC 90203638


▲ 테라델라스 ‘아르타세르세’ 안나 마리아 판차렐라(아르타세르세)/셀린 리치(아르바체)/마리나 콤파라토(만다네) 임선혜(세미라)/후안 바우티스타 오테로(지휘)/ 레알 콤파니아 오페라 데 카마라 RCOC 0800-3

▲ 모차르트 ‘돈 조반니’ 요하네스 바이서(돈조반니)/로렌초 레가초(레포렐로) 알렉산드리나 펜다찬스카(돈나 엘비라)/케네스 타버 (돈 오타비오)/올가 파스치니크(돈나안나)/임선혜 (체를리나)/르네 야콥스(지휘)/RIAS 카머콰이어 Harmonia Mundi HMC 90196466

▲ 하이든 ‘하모니 미사’ 임선혜(소프라노)/브리타 슈바르츠(알토)/ 베른하르트 베르히톨트(테너)/하노 뮐러 브라흐만(베이스)/헬무트 뮐러 브륄(지휘)/ 쾰른 카머 오케스트라/쾰른 대성당 합창단 Naxos 2.110272


▲ 솔레르 ‘꿈’ ‘도라강의 축제’ 임선혜·라파엘라 밀라네시(소프라노)/망누스 스타벨란(테너)/후안 바우티스타 오테로(지휘)/ 레알 콤파니아 오페라 데 카마라 RCOC 08003

▲ 하이든 ‘기사 오를란도’ 마를리스 페터젠(안젤리카)/톰 랜들(오를란도)/ 피에트로 스파뇰리(로도몬테)/알렉산드리나 펜다찬스카(알치나)/임선혜(유릴라)/르네 야콥스 (지휘)/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 EuroArts 2057788

▲ 말러 교향곡 4번 임선혜(소프라노)/만프레트 호네크(지휘)/ 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 Exton EXCL 00048


▲ 테라델라스 ‘세소스트리’ 임선혜(세소스트리)/알렉산드리나 펜다찬스카 (니토크리)/케네스 타버(아마시)/후안 바우티스타 오테로(지휘)/레알 콤파니아 오페라 데 카마라 RCOC 11023

▲ 포레 ‘레퀴엠’ 임선혜(소프라노)/콘라드 자넛(바리톤)/막스 한프트(오르간)/페테르 데이크스트라(지휘)/ 뮌헨 카머 오케스트라/바이에른 방송합창단 Sony Classical 88697911082

▲ 헨델 ‘아그리피나’ 알렉산드리나 펜다찬스카(아그리피나)/임선혜 (포페아)/베준 메타(오토네)/마르코스 핑크 (클라우디오)/르네 야콥스(지휘)/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 | Harmonia Mundi HMC 902088.90


▲ 모차르트 ‘가짜 여정원사’ 조피 카르토이저(산드리나·비올란테)/니콜라 리벵크(집정관)/제러미 오벤든(벨피오레)/알렉스 펜다(아르민다)/마리 클로드 샤퓌(라미로)/임선혜 (세르페타)/르네 야콥스(지휘)/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 | Harmonia Mundi HMC 902126.28

▲ 바흐 ‘마테수난곡’ 베르너 귀라(에반겔리스트)/요하네스 바이서(예수)/임선혜(소프라노)/베르나르다 핑크(메조소프라노)/토피 레티푸(테너)/콘스탄틴 볼프(베이스)/르네 야콥스(지휘)/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RIAS 카머콰이어 | HMC 802156.58

▲ 헨델 ‘오를란도’ 베준 메타(오를란도)/조피 카르토이저(안젤리카)/ 크리스티나 하마스트룀(메도로)/임선혜(도린다)/ 콘스탄틴 볼프(조로아스트로)/르네야콥스(지휘)/ 바로크 오케스트라 | Archiv 4792199


▲ ‘오르페오’ 이탈리아와 프랑스 칸타타들 임선혜(소프라노)/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 Harmonia Mundi HMC 972189

▲ 바흐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임선혜(소프라노)/페트라 노스카요바(메조소프라노) 슈테판 셰르페(테너)/얀 판 더르 크라번(바리톤)/ 시히스발트 카위컨(지휘)/라 프티트 방드 Challenge Classics CC 72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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