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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리 롤 모턴 ‘King Porter Stomp’
후배에게 영광을 내어준 아이러니의 역사
글 황덕호(재즈평론가·KBS 1FM '재즈 수첩' 진행자 2/1/2015 |   지면 발행 ( 2015년 2월호 - 전체 보기 )

젤리 롤 모턴

‘King Porter Stomp’ 

후배에게 영광을 내어준 아이러니의 역사


▲ ❶ Jelly Roll Morton 1923/24 Milestone MCD-47018-2|연주 시간 2분 35초|1924년 7월 17일 녹음|젤리 롤 모턴(피아노)

▲ ❷ The Fletcher Henderson Story: A Study in Frustration Columbia-Legacy C3K 57596|연주 시간 3분 9초|1928년 3월 14일 녹음|플레처 헨더슨(지휘)+헨더슨 오케스트라/보비 스타크(트럼펫)/콜먼 하킨스(테너색소폰)/조 스미스(트럼펫)/부스터 베일리(클라리넷)/지미 해리슨(트롬본)

▲ ❸ The Complete Pacific Jazz Sessions Blue Note 0946 3 58300 2 6|연주 시간 3분 18초|1958년 4월 9일 녹음|길 에번스(편곡·지휘)+캐넌볼 애덜리(알토색소폰)

▲ ❹ Mr. Jelly Lord: Standard Time Vol.6 Columbia CK 69872|연주 시간 3분 15초|1999년 1월 12일(혹은 13일) 녹음|윈턴 마살리스(트럼펫)+에릭 루이스(피아노)


1935년, 마흔다섯 살의 젤리 롤 모턴(1890~1941)은 늘 미간을 찌푸렸다. 시카고 시절(1926~1927)만 해도 그의 밴드 레드핫 페퍼스가 발표한 음반은 루이 암스트롱의 핫파이브 녹음을 제외하면 적수가 없을 만큼 재즈의 첨단을 걷고 있었다. 하지만 뉴욕으로 무대를 옮긴 뒤 그의 음악은 생기를 잃었고, 설상가상으로 1929년에 터진 대공황은 뉴욕의 음악 시장을 단숨에 폐허로 만들었다.

모턴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요소는 또 있었다. 대공황의 잿더미 속에서도 뉴욕의 재즈는 미약하나마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소위 빅밴드라 불리던 큰 편성의 밴드가 밴드 리더의 지휘 아래 만들어내는 ‘짜인’ 사운드는 재즈의 원적지 뉴올리언스 출신이자 스스로를 재즈의 창시자로 여긴 모턴의 귀에 역겹게 들린 것. 1930년대 초를 지나 중반에 이르자 그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졌다. 모턴은 뉴욕의 재즈 흐름을 참다못해 클럽 매니저 일과 음악 활동을 병행하리라 마음먹고 뉴욕을 떠나 워싱턴 DC로 향했다. 


재즈 스탠더드 넘버 12(연재 순서)


1월 ‘Lover Come Back To Me’ 1928

지그문트 롬베르크·오스카 해머스타인


2월 ‘King Porter Stomp’ 1924

젤리 롤 모턴


3월 ‘What Is This Thing Called Love’ 1929

콜 포터


4월 ‘All The Things You Are’ 1939

제롬 컨·오스카 해머스타인


5월 ‘Honeysuckle Rose’ 1929

패츠 월러·앤디 라재프


6월 ‘Body And Soul’ 1930

자니 그린·에드워드 헤이먼·로버트 사워


7월 ‘I Got Rhythm’ 1930

조지 거슈윈·아이라 거슈윈


8월 ‘Cherokee’ 1938

레이 노블


9월 ‘How High The Moon’ 1940

모건 루이스·낸시 해밀턴


10월 ‘Autumn Leaves’ 1945

조제프 코스마·자크 프레베르·조니 머서


11월 ‘C Jam Blues’ 1942

듀크 엘링턴


12월 ‘Round Midnight’ 1944

델로니어스 몽크·쿠티 윌리엄스·버니 해니
 


누군가의 불운은 곧 누군가의 성공

모턴이 워싱턴 DC로 떠난 그해, 애송이 티를 채 벗지 못한 스물네 살의 베니 굿맨(1909~1981)은 뉴욕에서 자신의 빅밴드와 함께 NBC 라디오의 ‘레츠 댄스’(Let’s Dance)에 정기 출연하고 있었다. 야심찬 젊은이는 이 기회를 발판 삼아 뉴욕에서 출발해 서부지역까지 갔다가 그의 고향 시카고로 돌아오는 긴 연주 여행을 기획했다. 하지만 그 여정은 참담했다. 가는 곳마다 공연장은 텅 비어 있었고, 캘리포니아에 이르기도 전에 매니지먼트 회사는 투어를 중단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굿맨은 원래의 계획을 강행했고, 푹푹 찌는 8월 베니 굿맨 오케스트라는 LA의 팔로마 볼룸에 도착했다. 늘 하던 대로 그들은 무난한 스윙 음악을 연주했고, 청중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굿맨은 무대에서 당장 끌려 내려오더라도 정말 좋아하는 곡을 연주하자고 다짐하고는 ‘King Porter Stomp’를 연주했다. 그리고 도입부의 네 마디가 채 끝나기도 전에 댄스홀은 광란의 도가니로 바뀌었다. 베니 굿맨 오케스트라가 이 곡을 ‘레츠 댄스’에서 연주하던 시간이 뉴욕은 심야지만 서부 해안지역은 황금시간대였던 것이다. ‘King Porter Stomp’는 스윙 시대를 알리는 화려한 팡파르가 되었다.

1935년 모턴과 굿맨의 운명은 이토록 극명하게 갈렸다. 더욱이 ‘King Porter Stomp’가 원래 젤리 롤 모턴의 작품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리고 모턴이 이러한 빅 밴드 스윙을 너무도 혐오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 운명은 너무도 얄궂다. 심지어 베니 굿맨의 화려한 성공 뒤편에 이 음악을 실질적으로 완성한 불운의 인물이 있었다는 것은 더욱 아이러니하다.

모턴과 굿맨의 운명이 갈린 1935년 당시 서른일곱 살의 플레처 헨더슨(1898~1952)도 이 얄궂은 운명의 한 축을 담당했다. 재즈 역사상 빅 밴드의 창시자로 평가받는 그는 탁월한 음악적 재능의 소유자지만, 내성적인 성격에 밴드 통솔력과 사업 감각이 부족했다. 밴드를 운영하며 적자에 허덕이던 그는 1935년 결국 12년간 유지해온 빅 밴드를 해산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빅 밴드를 위해 정성스레 만들어둔 편곡 악보를 베니 굿맨에게 헐값에 팔아넘겼고, 그 안에는 ‘King Porter Stomp’도 포함되어 있다.

▲ 글 황덕호 KBS 1FM ‘재즈 수첩’을 16년 동안 진행하고 있다. ‘평론가’보다는 ‘애호가’가 되기 위해 오늘도 쓰고, 듣고, 틀고, 강의한다

20세기의 초입과 말미가 서로 꼬리를 물다

이 곡은 1924년 작곡가 모턴의 피아노 독주에 ‘King Porter’라는 제목으로 제넷 레코드에서 처음 녹음했다.(음반①) 전형적인 래그타임 형식과 리듬을 담은 이 곡은 후반부에 이르러 가장 인상적인 주제 선율을 등장시키면서 절정에 이른다. 탁월한 작곡가인 모턴의 기지를 단번에 느낄 수 있는 걸작이다. 4년 뒤 헨더슨은 이 곡을 빅 밴드 곡으로 편곡했지만(아울러 제목도 ‘킹 포터 스톰프’로 바꾸었다) 기본적으로 모턴의 아이디어를 따랐다. 곡의 시작부터 헨더슨 오케스트라의 일급 독주자들은 화려한 즉흥연주를 수놓지만 곡은 자신의 실체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음반②) 하지만 지미 해리슨의 트롬본 솔로가 끝난 뒤 총주가 뜨겁게 울리면서 음악은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재즈 사운드를 들려준다. 모턴의 피아노 독주에서 일관되게 흐르던 왼손의 싱코페이션 리듬은 헨더슨 오케스트라 연주의 마지막에서 준 콜의 튜바가 정확히 네 박자 모두를 균일하게 찍어줌으로써 스윙 리듬의 핵심을 들려준 것이다. 모턴은 이 모든 변화를 혐오했고, 헨더슨은 그 변화를 자신의 손으로 이루고 싶었겠지만 이 모든 열망을 외면하고 작품의 모든 결실은 베니 굿맨에게 돌아갔다.


▲ 많은 음악가들이 곁에 있기를 바랐던 길 에번스

이 우여곡절의 역사 때문인지 이 작품은 1920년대 초기 재즈곡 가운데서 보기 드물게 모던재즈 뮤지션에 의해 연주되었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빅 밴드 사운드를 만든 길 에번스는 독자적으로 스튜디오 빅 밴드를 결성해 퍼시픽 레코드에서 이 곡을 녹음했다.(음반③) 그의 아이디어는 헨더슨 오케스트라의 색소폰 파트에 찰리 파커가 앉아 있는 것이었고, 이미 세상을 떠난 파커를 대신해 그 아이디어를 완성한 것은 당시 마일스 6중주단의 멤버 캐넌볼 애덜리다. 그는 ‘버드’가 되어 시종일관 이 곡을 누비고 다닌다. 반면 윈턴 마살리스의 녹음(음반④)은 1924년 12월에 있었던 모턴과 킹 올리버(코넷)의 이중주에 대한 명백한 오마주다. 모턴의 증언에 따르면, 1900년대 초에 작곡한 이 곡을 윈턴은 20세기의 끝자락에서 화려한 테크닉으로 부활시켰다. 고색창연한 ‘컵 뮤트’(약음기) 사운드가 그윽하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모든 재즈는 현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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