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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과 원일
끝나지 않은 시나위
글 김선영 기자 12/1/2014 |   지면 발행 ( 2014년 12월호 - 전체 보기 )



신해철과 원일

끝나지 않은 시나위

태동했으나 빛을 보지 못한 미완의 기대작.


그에 관한 옅은 회상과 
짧은 기록



그들이 꿈꾼 컨템퍼러리 시나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씁쓸한 마음이다. 관객으로서 궁금해하고 기다리던 공연이 무산됐을 때. 속상한 순간이다. 무대 위, 예술가의 환상 조합이 성립될 수 없을 때. 장르에 상관없이, 공연의 탄생과 소멸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이란 그런 거다. 어느 때보다 유독 많은 공연이 심해 속으로 사라졌던 올해인지라 더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시나위 프로젝트3-록 시나위 vs 관현악 시나위’. 12월에 꼭 보겠다며 달력에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에 별까지 쳐놓은 공연이었다. 이번 공연은 2012년부터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연주자의 개성이 강하게 발휘되는 시나위를 통해 연주자의 창의성을 살려온 ‘시나위 프로젝트’의 완결판 격에 해당하는 공연이었다. 여기에 신해철을 중심에 둔 새로운 넥스트(N.E.X.T)와 원일이 이끄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시나위 속에서 어떤 조합을 이뤄낼지 솔직히 상상조차 할 수 없기에 그저 궁금한 마음뿐이었다. 이후 지난 10월 27일 신해철의 부고를 뉴스로 접했을 때, 희한하게도 나는 그가 지금껏 해온 음악에 대한 회상보다 앞으로 그가 머릿속으로만 그려놓았던, 아직 누구도 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보지 못할 퍼포먼스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컸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로 마음먹었다. 어떤 이유로든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하여 귀 기울이지 않고 마음 쓰지 않는다면 참신한 발상과 모험을 앞으로 얼마나 만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는 태동했으나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미완의 공연에 관한 옅은 회상이자 짧은 기록이다.

일시 2014년 11월 17일 오후 1시 30분

장소 국립극장 행정동 4층

참석자 원일(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권태연(국립국악관현악단 책임PD)

지난 6월, 비가 오던 일요일 밤이었는데, 신해철 씨가 보낸 긴 메시지가 도착했어요. 얼마 전 국립국악관현악단과 연주한 ‘대취타 易(역)’을 들었던 게 생각났는지… ‘대취타를 대규모 오케스트라랑 아티스트 누구누구와 함께 모아서 믹싱을 이렇게 저렇게 하면 정말 판타스틱할 것 같은, 비 오는 밤이야 형!’

대략 이런 내용이었죠. 그렇게 해서 신해철과 함께하는 시나위 프로젝트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어요.

그보다 훨씬 전에는 KBS TV 국악 오디션 프로그램 ‘케이소리(K-Sori) 악동’을 통해 총감독 임동창 씨와 음악감독을 맡은 신해철 씨를 같이 만났어요. 그때 저는 프로그램 자문위원으로 참여했고요. 그 전까지는 남들에게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전해 듣기만 하고 스쳐 지나가기만 했는데, 제대로 만난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국립국악관현악단과 신해철 씨의 인연은 2006년 국립극장에서 열린 제3회 한국가요제로 거슬러 올라가요. 한국적인 정체성을 품은 가요제를 진행하자는 취지에서 이뤄진 가요제였는데, 그때 넥스트가 해오던 국악에 대한 진지한 시도를 무대에서 같이해보자는 기획으로 한 무대가 마련됐죠. 아마 그날이 신해철 씨의 첫째 딸이 태어난 날이라 공연이 끝난 뒤에 서둘러 가봐야겠다고 말하던 모습도 기억나요.

그동안 그가 해온 작업을 지켜봐온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그만큼 국악에 대한 관심과 실험을 한 사람도 없었죠. 넥스트 3집 ‘더 월드’의 ‘Komerican Blues’나 ‘Age Of No God’에는 풍물과 판소리를 넣었어요. 1999년 내놓은 앨범 ‘모노크롬’에서 대금의 변주를 활용한 ‘무소유’도 인상적이고 무엇보다 이자람이 소리를 맡고, 민영치(대금·태평소), 장재효(장구), 남궁연(드럼)이 참여한 ‘Go With The Light’는 지금 들어도 놀라운 작품이죠. 2006년 독일 월드컵 무렵에 ‘돌격! 아리랑’이라는 월드컵 응원가를 발표한 것도 신해철 씨였어요. 넥스트 5집에 수록된 ‘현세지옥’에서는 국악의 타악기를 강렬한 메탈 사운드와 함께 교차시켜 지옥을 표현해내기도 했죠.

신해철 씨에겐 ‘파 이스트 샤먼 오케스트라’로 불리는 큰 프로젝트가 있었어요. 한국 음악가로서의 정체성과 국악을 함께 담아 세계를 향해나간다는, 아직 우리가 만나보지 못한 오케스트라였죠. 이 오케스트라를 아주 오래전부터 구상했던 것 같아요. 이미 여러 해 전에 신해철 씨가 언론을 통해 이야기한 적도 있죠. 그가 그려오던 거대한 청사진의 기초를 시나위 프로젝트에서 실험해보고, 가능성을 그려보고 싶어 했어요.

첫 미팅 때 그는 상당히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놓고 있었죠. 국립국악관현악단과 넥스트에 다른 연주자들까지 더해 만들어지는 음악이 그가 말하는 파 이스트 샤먼 오케스트라의 한 단면이지 않았을까 싶은데… 사실 쉽게 상상하기는 힘들어요. 그가 무엇을 상상하고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는지 알 수 없어 안타깝고 아쉬울 따름이죠.

공연 제목에 있던 ‘록 시나위’라는 단어는 지난 7월 초, 첫 미팅 때 나왔어요. 공연하기로 예정됐던 KB청소년하늘극장을 함께 둘러보면서 순간순간 떠오른 아이디어 가운데 하나였을 거예요. 그때 원형극장을 보면서 생각보다 더 재밌는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아이처럼 좋아했었죠. 보통 첫 미팅은 상견례 수준으로 끝나기 마련인데 신해철 씨는 그동안 해왔던, 그리고 새롭게 떠오른 생각들을 정말 거침없이 이야기해서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어요.

전통음악의 하나인 시나위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사실 음악가마다 상당한 온도 차이가 있어요. 그래서 각자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가 중요하죠. 저와 국립국악관현악단은 동시대 관객과 호흡하는 ‘컨템퍼러리 시나위’를 추구해요. 쉽게 말해 시나위는 재즈처럼 현장에서 발휘되는 즉흥음악이에요. ‘영원히 생성적인’ 음악을 상징하죠. 그래서 컨템퍼러리일 수밖에 없어요. 이런 측면에서 신해철 씨가 시나위 프로젝트를 좋아하고 동감했던 거죠.

2012·2013년 시나위 프로젝트에서는 단원들을 네 팀으로 나눠 팀마다 구조를 잡을 수 있는 음악감독을 뒀어요. 그 구조 속에서 연주자들이 창의성을 발휘하는 훈련을 했던 것이고, 그동안 팀 단위로 이뤄진 시리즈에 이어 세 번째엔 관현악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다다랐어요. 쉽게 말해 오케스트라가 집단으로 즉흥성을 발휘하는 음악인 거죠. 국악관현악단뿐만 아니라 록 밴드 역시 그 안을 들여다보면 악기 구성과 형태가 잡혀 있는데, 각 집단이 어떤 방식으로 열린 구조를 지향하는 음악을 보여줄 것이냐가 만드는 사람들로서도 흥미롭고 궁금한 부분이었어요. 그래서 의도적으로 ‘신해철의 록 시나위’ ‘원일의 관현악 시나위’ 같은 대결 구도의 연주를 가져가려고 했어요. 신해철 씨는 우리 악단을 활용한 좀 더 큰 단위의 사운드를, 저는 국악관현악단 안에서 새로운 물리적인 생성을 만들어내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죠.

신해철 씨가 ‘샤먼의 기원’에 관해 말했던 게 기억나요. 지금 우리는 신화적 상상력이 부족한 시대에 살고 있는데, 음악회나 축제가 맺힌 것을 풀어주는 기능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였어요. 디오니소스적인 난장의 축제 같은 공연, 그리고 거기에서 그가 꿈꾸던 오케스트라가 세계를 향해 우리 것을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원일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미완이 되어버린 기대작에 대한 아쉬움은 더욱 커졌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기억과 누군가의 기록을 통해 여기, 원일과 국립국악관현악단 그리고 신해철의 울리지 못한 시나위가 또 다른 모양으로 남겨질 것만은 분명하다. 신해철을 알고 그의 음악을 아는 사람들, ‘다른 국악’을 꿈꾸는 젊은 음악가들에게 그의 프론티어 정신이 고이 남겨지길 바란다.

글 김선영 기자(sykim@gaeks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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