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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배우 정운선
색깔 없는 연기자의 빛
글 이지혜 인턴 기자 11/1/2014 |   지면 발행 ( 2014년 11월호 - 전체 보기 )




그저 TV에 나오고 싶어 연기를 시작한 아이는 색깔보다는 ‘빛깔’을 내는 배우로 성장했다. 삶의 모든 길이 연기로 통하는 정운선을 만나 진짜 배우의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동국대학교 연극학과 졸업

2010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

2011 뮤지컬 ‘김종욱 찾기’,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

2012 연극 ‘목란언니’,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 연극 ‘아워타운’

2012 49회 동아연극상 유인촌 신인연기상

2013 연극 ‘목란언니’

2014 연극 ‘유리동물원’, 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진짜 배우. 정운선과 대화를 나누며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올랐던 단어였다. 그동안 다소 무거운 역할만을 맡았던 그녀지만 무대 밖에서는 한없이 발랄하고 생기가 넘쳤다. 촬영을 진행하는 동안에도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았고 모니터를 보고 스스로의 단점을 찾아내 수정하는 모습에서 당찬 성격을 엿볼 수 있었다.

정운선은 아역 배우 생활과 동국대학교 연극학과를 통해 탄탄한 연기 입지를 다져 2010년, 160대1의 경쟁률을 뚫고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으로 당당히 데뷔 무대를 가졌다. 첫 뮤지컬 작품이었음에도 호평을 받았고 그해 뮤지컬 어워즈 신인상 후보에도 올랐다. 그리고 2012년, 처음 연극에 도전했던 그녀는 ‘목란언니’로 49회 동아연극상 유인촌 신인연기상을 수상했다.

섬세한 표현력을 인정받는 그녀에게 배우로서 어떤 색깔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색깔이 없는 것이 나의 색깔”이라는 다소 철학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색깔을 갖는다는 것은 다르게 생각하면 한쪽으로 치우친다는 의미도 담고 있기 때문에 경계하는 것 중 하나”라고 했다. 배우로서 그녀는 자연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자연의 꽃·나뭇잎 등은 햇빛이 어느 쪽에서 비추느냐에 따라 빛과 색이 어우러져 다르게 보이지만 결국 고유한 색 그 자체를 가지고 존재하기 때문이란다. 마치 자연처럼 만나는 작품·상황에 따라 조화를 이루며 그 순간 내야 할 ‘빛깔’을 내고 싶다는 그녀. 그녀의 다채로운 인생 연극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나, 정운선의 시작


처음 연기를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때였다. 물론 ‘연기가 무엇이다’라는 것을 알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TV에 나오고 싶었던 욕심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교 선생님들을 비롯한 주변 지인들이 “재능이 있어 보이니 아역 배우를 시켜보면 어떻겠느냐”고 부모님에게 권유해 오디션을 보게 되었다. 그렇게 아역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아역 배우들의 활동 범위가 넓지 않았기 때문에 주로 EBS에서 교육 프로그램이나 청소년 드라마에 출연했다. 힘들기보다 재밌었고, TV에 나온다는 사실이 마냥 좋았다.

멈춤, 그리고 연기에 대한 열망

6학년 때까지 꾸준히 아역 배우로 활동했는데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부모님이 일을 그만두게 했다. 초등학교 때 촬영 때문에 학교를 일주일에 한두 번밖에 못 갔기 때문에 중·고등학교 시절을 평범하게 보내길 원하셨다. 혹시나 내가 비뚤어지거나 성장기에 겪어야 할 것들을 못 겪고 지나가게 될까봐 우려하셨던 것 같다. “평범하게 학교 다니면서 공부 열심히 하다가 대학에 들어갈 때, 그때도 연기를 하고 싶다면 다시 시작해라”라고 하셨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쭉 꿈이 배우였는데 내 의사와 상관없이 성장이 멈춰지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그때는 중·고등학교 시절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늘 ‘빨리 연기를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뿐이었고 배우가 되면 무엇을 할지 계속해서 상상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원하던 동국대학교 연극학과에 입학해 다시 연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평범한 일상의 의미

배우는 일상생활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몸이 악기가 되고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아주 평범한 일상이 반복되지만 그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다 경험이 되고 자양분이 된다. 그게 즐거운 일이든 힘든 일이든 아픈 일이든 모두 다 마찬가지다. 모든 경험이 연기를 할 때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에 매 순간 깨어 있고 그 상황을 정확히 느끼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아주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상 속에서도 매번 처음 느껴보는 정서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많이 느껴보고 생각해보면서 끊임없이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다. 어떤 감정 상태에 대해 내가 느끼는 특별한 이 감정이 무엇인지 스스로 물어본다. 그 순간은 다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에 내가 겪은 일들과 그때 느끼는 정서들에 대해 몇 분 몇 초까지 자세하게 배우 노트에 써놓는다.


예술가로서 삶을 위해 감내한 것

굉장한 슬픔이나 고통, 절박한 상황을 겪었을 때는 그 안으로 더 들어가려고 한다. 그 감정들을 더 세심히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배우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때로는 멀찍이 거리를 두고 ‘상황이 이렇구나’ ‘내가 이런 상황 속에서는 이렇게 행동하는구나’ 등을 느끼며 나를 관찰하기도 한다. 이런 부분들에 있어서 나는 좀 잔인하기도 하다. 그러다 보면 지나간 공연들 중에 지금 겪고 있는 상황과 비슷한 장면들이 생각난다. ‘와, 그때 나는 거짓말을 했구나. 진짜라고 생각하고 연기를 했는데 이런 상황이 닥치면 그렇지가 않구나’ 하고 반성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상황 속에서도 배우인 나는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축복받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스스로 프로임을 느꼈던 순간

내가 하고 싶은 일뿐만 아니라 하기 싫은 일도 기꺼이 하며 그 안에서 무언가를 찾아갈 때다. 어려운 순간이나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자양분을 찾아내려고 하니까. 그때는 잔인할 만큼 나 스스로에게 냉정하고 철저해진다. 사실 평소의 나는 되게 어리바리한 편이다. 심지어 “왜 그렇게 바보 같니”라는 말을 듣기도 할 정도다. 그런데 배우라는 직업 안에서는 나도 놀랄 만큼 미련할 정도로 집요하게 군다. 스스로를 처절한 상황으로 더 몰아세우기도 한다. 때로는 힘들다고 투정도 부리고 싶고, 끝도 없이 무너지고 싶기도 하지만 그런 나를 스스로 다독이면서 다시 일어나게 하는 것을 보면 ‘나도 이렇게 프로가 되어가는구나’라고 느끼곤 한다.

정운선과 밀접한 타 예술 장르

음악이다. 신기하게도 이제까지 해왔던 모든 작품에서 악기를 다루거나 노래를 하는 장면들이 있었다. ‘내 마음의 풍금’도 그렇고 ‘목란언니’의 목란이는 아코디언 전공자였다. 정말 단 한 번도 빠짐없이 그랬다. 심지어 ‘유리동물원’에서는 노래랑 악기가 없으니까 축음기를 그렇게 돌렸다. 나중에는 빠졌지만 사실 처음에는 흐느끼면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도 있었다. 이걸 떠나서도 음악은 나에게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것 같다. 여유가 있을 때 재즈·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찾아서 듣는 것을 좋아하는데 가요보다는 주로 연주 음악을 듣는다. 특히 음악을 들으면서 계속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치유를 받는 듯한 느낌이 든다. 요즘은 고전음악을 많이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릴 때는 몰랐는데 조금씩 관심을 갖고 듣다 보니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위대함이 느껴진다. 나는 이런 것들을 어떻게 표현해낼 수 있을지 고민한다.

평단과 대중에게 듣고 싶은 말

연기를 잘한다는 말보다는 위로·위안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싶다. 연기를 잘한다는 말은 내가 연기를 한다는 그 자체가 너무 드러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무대 위에서 그 인물로 잘 살아냈다면 관객이 그 인물을 통해 자기 자신을 투영해서 보게 된다고 생각한다. ‘아워타운’이든 ‘유리동물원’이든 모든 작품에서 관객이 무심코 극장에 와서 공연을 보며 자신의 어떤 부분이 환기가 되었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나의 연극을 보며 가족도 한번 보고 주변도 한번 돌아보며 ‘그렇지. 사는 게 다 이런 거지’라고 느꼈으면 한다. ‘아워타운’에서 에밀리의 마지막 대사가 늘 기억에 남는다.

“몰랐어요. 모든 게 그렇게 지나가는데, 그걸 몰랐던 거에요. 살면서 자기 삶을 제대로 깨닫는 인간이 있을까요? 매 순간마다요.”

정말 매 순간을 섬세하게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사는 데 치여 삭막하게 있기보다는 주변에 감사한 일들을 많이 보고 느꼈으면 한다. 그래서 힘든 일이 있더라도 “그런 게 사는 거지”라고 위안을 해주고 싶다. 무거운 작품이든 밝은 작품이든 관객이 연극을 보며 누군가 꼭 안아준 것 같은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 직접 만져줄 순 없지만 토닥토닥해주고 ‘괜찮아, 다 똑같아’라고 나를 통해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려면 내가 더 똑바로 잘해야겠다는 책임감이 들기도 한다.

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11월 8일~12월 14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출연 정운선(실비아 역)·남명렬(크리스토퍼 역)·남기애(베스 역)·김준원(다니엘 역) 외

사진 박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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