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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1984’
가장 낯선 방식으로 말하는 ‘인간
글 김옥란(연극평론가) 11/1/2014 |   지면 발행 ( 2014년 11월호 - 전체 보기 )



9월 23일~10월 18일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윤한솔 연출의 연극 ‘1984’를 보고 나오는데 웃음이 났다. 원작이야 어떻든 ‘윤한솔 공연’으로 바꿔놓는 악동 기질이 여전하다. 윤한솔의 연출은, 해방기 작품인 진우촌의 ‘두뇌수술’을 발굴해서 1940년대 신파 영화처럼 과장되게 보여주거나, 작가 고재귀의 ‘사람은 사람에게 늑대’라는 작품에선 공연이 끝나고 관객이 나간 후 에필로그 장면을 공연해서 나갔던 관객이 다시 돌아와 공연을 마저 보게 만들기도 했다.

이번 공연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가 원작이다. 포스터가 무시무시한데 누군가 바리캉을 들고 꿇어 엎드린 사람의 머리를 밀고 있다. 반항기가 다분하다. 공연에서도 배우들이 전원 삭발한 채 나온다. 공연장 밖에서 어슬렁거리는 연출가 윤한솔도 삭발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원작이 담고 있는 미래 세계의 디스토피아적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다. 공연은 1984년 1월 1일 인공위성을 통해 전 세계에 텔레비전으로 방송된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 영상과 함께 시작된다. 무대 뒷면에 10여 대의 스크린이 나란히 서 있고, 한쪽엔 전자 기타리스트가 라이브로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흡사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전시장에 들어선 것 같다. 스크린에 형형색색의 영상이 비춰지자 바벨탑을 연상케 하는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설치물 ‘다다익선’이 생각났다. 그러자 바벨탑 건설에 관한 카프카의 소설 일부분이 낭독되면서 공연이 시작된다. 조지 오웰에게는 미래였던, 그리고 백남준에게는 현재였고, 윤한솔에게는 과거인 ‘1984년’에 대한 다양한 문화 역사적 기억을 공연의 컨텍스트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기지와 재치가 가득한 공연이다.

그리고 여기에 마지막 ‘신의 한 수’가 덧붙여진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와 줄리아가 빅 브라더의 텔레스크린의 감시와 통제에서 벗어나 사랑을 나누는 침대 방 한쪽 구석에 놓인 텔레비전에서 1984년 강변가요제에서 불렀던 이선희의 노래 ‘J에게’가 나온다. 이 노래는 윈스턴 스미스가 총살당할 때 노래방에서 불렀던 마지막 노래이기도 하다. 윈스턴 스미스가 빅 브라더를 완전히 사랑하도록 세뇌당한 순간 노래방 스크린에 한 글자씩 지나가는 “J 난 너를 못 잊어, J 난 너를 사랑해”의 가사가 빅 브라더에 대한 찬양가로 울린다.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1984년’에 대한민국 군부독재의 역사를 겹쳐놓으면서 어떤 ‘불온한 상상력’을 건드린다. J는 공연에 대한 메타적 관점에서 조지 오웰에 대한 찬양가이자 전두환에 대한 찬양가처럼 들린다. ‘불온한 상상력’은 연출가 윤한솔의 극단 그린피그의 슬로건이다.

공연은 시종일관 ‘윤한솔 식으로’ 유쾌하게 흘러간다. 무대 앞에 설치된 컨베이어벨트는 출퇴근을 반복하는 배우들을 마치 상품처럼 실어 나르고, 배우들은 서류를 넘기고 빵을 씹는 일상의 패턴화된 동작을 반복한다. 윈스턴 스미스와 줄리아의 성행위는 기계적인 냉정함과 동물적인 흥분으로 의도적으로 반복된다. 무대에는 처음부터 테이블과 식탁, 침대가 설치되어 있고, 마치 서치라이트처럼 조명이 무대 이곳저곳을 비추면 장면전환 없이 곧바로 사무실과 식당, 고문실로 넘어간다. 수술로 얼굴을 바꾼 윈스턴 스미스를 박기원과 이필주 배우 2명이 연기하게 한 것은 전작 ‘두뇌수술’에 대한 패러디이자 조크다. 줄리아 역 정양아의 집중력 있는 연기도 인상적이다. 윈스턴 스미스는 어머니의 사랑을 기억할 땐 인간이었지만, 줄리아의 사랑을 잊을 땐 돼지가 되었다. 극단 그린피그는 가장 낯선 방식으로 ‘인간’을 말하고 있다.

사진 두산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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