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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그 영화에 색을 입히는 음악감독
영화에 색을 입히는 음악감독
글 김호경 기자 11/1/2014 |   지면 발행 ( 2014년 11월호 - 전체 보기 )




뉴욕에서 재즈 베이시스트로 활동하다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영화음악을 시작한 지 겨우 5년 남짓.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과 흥행 성패의 책임 사이에서 끊임없이 발전을 꾀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악마를 보았다’(2010) ‘도가니’(2011)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2013) 그리고 지난 10월 2일 개봉한 ‘마담 뺑덕’까지, 이 영화들의 음악을 유심히 들은 적이 있는지? 영화가 끝난 후 극장을 걸어 나오며 특정한 멜로디를 흥얼거린 적은 없어도 특유의 음울하면서도 낭만적인 정서에 푹 빠져 한동안 영화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경험은 있을 것이다. 이 작품들의 중심에는 음악감독 모그가 있다. 그는 철저하게 영상을 위한 음악을 만든다. 스토리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인물의 내면에 집중해 흐름을 파악한다. ‘도가니’의 쓸쓸한 피아노 선율과 ‘악마를 보았다’의 구슬픈 보사노바는 이러한 과정의 산물이다. 그는 시나리오를 꼼꼼히 리서치하고 객관화하는 과정을 통해 완성도 있는 영화음악을 만들어낸다.

그의 필모그래피는 이 외에도 ‘인류멸망보고서’(2012)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회사원’(2012) ‘남자사용설명서’(2013) ‘역린’(2014) 그리고 할리우드 작 ‘라스트 스탠드’(2013)까지 장르가 다양하다. 뉴욕에서 재즈를 연주하는 베이시스트로 활동하다 한국으로 건너와 본격적으로 영화음악을 시작한 지 겨우 5년 남짓.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이토록 치열하게 성장한 건 남다른 도전 의식이 바탕이 되었다. 그의 작업실이 궁금해 방문을 요청했지만 그는 곧 개봉하는 ‘상의원’ 영화음악 작업으로 폭탄을 맞은 상태라며 기자를 삼청동의 한 카페로 불러냈다.

오랜만에 모그 감독 특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영화를 만났다. ‘마담 뺑덕’의 음악은 기존 작품들보다 좀 더 절제된 느낌이던데, 음악감독 이은주와 공동 작업이라 이러한 결과물이 나온 것인가.

‘마담 뺑덕’의 임필성 감독이 처음부터 ‘악마를 보았다’와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 분위기의 음악을 원했다. 첫 촬영 단계부터 그 음악들을 들으면서 작업했다고 하더라. 그 작품들은 나의 음악 세계가 가장 잘 투영된 범주의 음악이라 작업이 난해하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마담 뺑덕’은 상업영화와 예술영화 사이에서 선 밟기를 하고 있는 작품이다. ‘인간의 욕망’이라는 주제는 대한민국의 모든 어른에게 자극적인 소재일 수 있지만 좀 더 깊이 있게 들어가 생각할 거리를 만들기도 해야 하니 자극과 고뇌라는 두 가지 점을 모두 충족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이은주는 나와 꽤 오랫동안 작업해온 작곡가로, 올해 모스크바 영화제에 다녀온 신연식 감독의 ‘조류 인간’을 통해 음악감독으로 입봉했다. ‘마담 뺑덕’의 여주인공 ‘덕이’ 역할의 감정선이 나로서는 완벽하게 이해가 가지 않아 이은주에게 맡겼다. 아무래도 남자인 내가 젊은 여자의 복수심을 파헤치기에는 무리가 있더라.(웃음)

영화 음악감독은 프로덕션 상황에 따라 시나리오 단계부터 또는 영상 편집이 끝난 후에 투입되기도 한다고 알고 있다. 영화의 완성도를 생각했을 때는 전자가 나을 것 같다. 영화마다 영상만큼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면도 있지 않은가?

오히려 반대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렇다. 상상하고 추측해서 작업을 하는 것보다 영상을 보면서 하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 배우마다, 감독마다 방법과 정도가 다르니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특정 장면에서 어떤 음악을 통해 어떤 영상이 표현되었으면 좋겠다는 감독의 의도가 있다면 미리 움직일 수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장면에 국한된 이야기다. 영화 전체에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영상을 접한 후 음악으로 인물을 표현하고 스토리를 극대화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나?

먼저 장면마다 개요가 필요하다. 그것을 서사할 수 있는 감정을 어느 지점까지 끌고 올라가야 할지, 관객에게 어떤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또한 이것이 객관적으로 바라봤을 때 얼마나 타당한지 차근차근 확인한다. 예를 들어 등장인물의 슬픔과 말러의 음악이 잘 어울릴 것 같아 개인적으로 욕심이 나더라도 여러 사람이 공감하지 않으면 집착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현대음악을 매우 좋아하지만 ‘절호의 지점’에서만 사용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없이 난해해지니까. 작품 전체와 색을 맞추고 타이밍을 노리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이런 점에서 영화음악은 야구와 매우 비슷하다. 몸값이 가장 비싼 선수라도 경기 내내 공을 던질 수는 없다. 꼭 필요한 선수가 적재적소에 나와 줘야 경기에서 이길 수 있다.

전체적으로 모던한 감각의 음악이라 현대영화의 입맛에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데…

맞다. 시대를 잘 만났다고 생각한다. 나는 클래식을 정식으로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 순수예술에 대한 동경이 더 크다. 그래서 지금도 세종문화회관 뒤에 살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클래식 공연을 보러 간다.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김준성 음악감독과 같이 작업했는데, 그는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클래식을 공부해온 사람이라 확실히 배울 점이 많았다. 클래식 악기 연주자들과 녹음을 진행할 때도 나는 감정적인 표현으로만 디렉션을 주는데 그는 디테일하게 설명하고 소통하더라. 다만 이러한 경험과 나의 음악성을 더해 나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첼로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음역대를 일부러 과하게 사용해 불안한 감정을 유발한다거나 입체적인 사운드를 내기 위해 배치에 신경 쓴다거나 하듯이.


베이시스트로 활동하다 영화음악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모든 것은 도전 의식으로부터 시작됐다. 내가 영화음악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을 때 국내 영화계에서는 기타리스트 겸 음악감독 이병우가 가장 인정받고 있었다. 당시 나는 김지운 감독과 친했는데, 김지운 감독이 이병우와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 그를 통해 이병우의 성장 과정을 들을 수 있었다.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고 원래 가지고 있는 음악성이 뛰어나다고 하더라. 나도 그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어린 시절부터 장르를 가리지 않고 폭넓게 감상해왔고, 음악을 사랑했으니까.

그렇다면 더 예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음악을 접하게 된 계기를 물어야겠다.

그 또한 마찬가지다.(웃음) 영화음악에 ‘도전’했듯 음악에도 ‘도전’했다. 나는 어린 시절 럭비 선수였다.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하더라도 운동선수들은 과격하고 무식하다는 편견이 있었다. 수업에 들어가도 선생님들이 공부하라는 소리를 안 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음악을 접하게 됐다. 처음엔 재즈를 듣기 시작했다. ‘존 콜트레인’이 재즈의 거장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어떤 이유로 거장이라는 건지 잘 모르겠더라. 그래서 매일매일 자기 전에 두 시간씩 들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몇 년간 듣고 나니 그의 위대함이 느껴졌다. 쇼팽도 마찬가지로 접했다. 경쟁하듯 음악을 시작했고, 곧 사랑하게 되었다.

최근 SBS TV드라마 ‘비밀의 문’ 음악을 맡아 작업했다. 드라마는 처음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것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시작한 것인가?

맞다. 드라마는 영화보다 작업 환경이 더 좋지 않다. 스케줄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연출과 소통을 할 수도 없다. 철저하게 오더에 의해 돌아간다. 주변에서 ‘너는 드라마는 절대 못할 거야’라고 해서 했다. 사실 나의 의도와 다르게 음악이 삽입되거나 내가 만든 음악이 그들의 상황에 맞게 짜깁기되어 방송을 탈 때에는 정신적으로 힘들어지기도 하더라. 그래도 그게 누군가의 잘못은 아니니 원망은 하지 않는다. 도전에 의미가 있고 좋은 경험이 됐다.

현재 자극을 받고 있는 것이 있다면?

할리우드에서 ‘라스트 스탠드’ 영화음악을 만들며 처음으로 엄청난 양의 문서 작업을 해봤다. 매일매일 수십 개의 이메일에 답을 해야 했다. 그런데 열심히 쓰고 나니 내가 글 쓰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걸 알게 됐다.(웃음) 그래서 시놉시스를 쓰기 시작했는데, 아직 구체화된 건 없다. 촉박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컨템퍼러리 음악 등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로 실험적인 음악을 만들기도 한다. 어디까지나 개인 작업실 안에서 끝나기는 하지만. 사진작가와 갤러리에서 하는 퍼포먼스는 몇 년째 구상만 하고 있다. 이야기는 많이 오갔는데 전부 술자리에서 뜬구름 잡듯 한 거라 당최 진행이 되지 않는다.

앞으로의 계획은?

예술 분야에 있는 사람 모두 머릿속으로는 많은 생각을 할 것이다. 그것을 행하는 것과 행하지 않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20대에는 공연을 보러 갈 때 베이스를 들고 갔다. 그럼 정말 즉석에서 연주할 기회가 생기기도 했다. 40대가 된 지금은 그렇게 못한다. 그래도 그때의 패기와 용기는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다만 일의 규모가 커지면서 책임감을 느낀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상의원’ ‘협녀:칼의 기억’ ‘나를 잊지 말아요’가 잘되기를 노심초사할 것이다. 동시에 영화 외에 드라마·광고·공연 등 가리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범주에서 다양한 시도를 끊임없이 할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함께 삼청동길을 걸으며 그는 한 편의 영화가 영화감독과 제작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의 미래를 얼마나 좌우하는지 알게 되면 개인적인 욕심 같은 건 부릴 수 없게 된다며 영화계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래도 지금은 한 편 한 편 영화를 끝낼 때마다 안도하고 기뻐하는 게 행복하다고 말하며 서둘러 작업실로 돌아갔다. 그의 뒷모습에 실리는 믿음만큼 앞으로 그가 선보일 영화에도 벌써부터 신뢰가 간다.

사진 심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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