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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 ‘춘향’ 연출 안드레이 세르반&국립국악원 ‘공무도하’ 연출 이윤택
전통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글 김선영 기자 11/1/2014 |   지면 발행 ( 2014년 11월호 - 전체 보기 )




11월, 전통 창작 공연들이 남산과 우면산에 나란히 걸린다. 국립극장의 시즌제와 함께 ‘수궁가’ ‘장화홍련’ ‘서편제’ ‘변강쇠 점 찍고 옹녀’ ‘메디아’ 등으로 전통과 대중적 취향을 동시에 챙겨온 국립창극단은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연출 거장으로 손꼽히는 안드레이 세르반 카드를 지난해부터 예고해왔다. 

지난 2011년 개원 60주년을 맞이해 ‘국악의 대중화’를 다시 한 번 외치며 공연 트렌드에 발맞춰 여러 소리극을 선보였던 국립국악원은 올해 연출가 이윤택과 함께 총체극을 지향하며 새로운 형식의 음악극을 선보인다. 두 연출가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각기 다른 시선으로 재해석되고 있는 이들의 작업과 공연 스타일을 비교해보았다

어떤 작업을 해온 사람인가


세르반1943년 루마니아 태생 미국인 연출가. 대담하면서도 실험적인 연출로 미국과 유럽의 연극과 오페라 무대를 넘나들며 인정받아왔다.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들을 주로 해왔는데, 대표작으로 연극 ‘아가멤논’ ‘벚꽃동산’ ‘세 자매’ ‘헤다 가블러’ ‘미국의 천사들’ ‘크라이스 앤 위스퍼스’와 오페라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오텔로’ ‘트로이의 여인들’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호프만 이야기’ 등이 있다. 관객과 배우 사이의 긴밀한 거리를 선호하는 형태를 연극 무대를 통해 시도해왔으며, 매 작품마다 무대 공간과 연출을 이채롭게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스로 “특징을 갖지 않는 것이 내 연출의 특징이며, 언제나 스타일에서 달아나려고 한다”고 말할 정도. 셰익스피어가 ‘연극은 인생의 거울이다’라고 말했듯, 안드레이 세르반은 거울에 비친 것들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연출가다.

 

1952년생 부산 태생 한국인으로 시인이며 극작가이자 연출가.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시작으로 전통의 현대적 수용, 특히 전통연희 양식을 현재 시점에 자유자재로 불러와 풍자에 활용해왔다. 극단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으로 지금(시간성)·이곳(민족)·우리(공동체)를 화두로 삼아 글을 쓰고 연출해온 그의 대표작에는 연극 ‘시민 K’ ‘오구-죽음의 형식’ ‘문제적 인간 연산’ ‘시골선비 조남명’ ‘아름다운 남자’ ‘원전유서’ ‘길 떠나는 가족’이 있으며, 그는 창작 뮤지컬 ‘화성에서 꿈꾸다’ ‘이순신’의 대본을 직접 쓰고 연출하기도 했다. 전복적인 상상력으로 연극과 음악극 사이를 오가며 ‘전방위 문화게릴라’로 불리고 있다.

 

한국 전통 소재를 가지고 연출한 경험

세르반 없다. 다만 연극 ‘트로이의 여인들’(1997, 남산드라마센터)과 ‘크라이스 앤 위스퍼스’(2013, 국립극장)로 내한한 바 있다.

 

이 2009년 국립창극단의 ‘적벽’을 연출했고, 이듬해 국립남도국악원에서 전남 진도의 씻김굿을 연극과 접목시킨 ‘진도 씻김굿’을 무대화한 굿극 ‘씻금’을 맡았다. 굿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이미 연극 무대에서 지속적으로 보여왔는데, 동해안 별신굿을 다룬 연극 ‘오구-죽음의 형식’(1986), 경기도당굿을 다룬 ‘일식’(1999), 제주 칠머리당굿을 다룬 ‘초혼’(2004)이 있고, 그 외에 월악산 돌부처의 살보시 설화(‘바보각시’)나 선비춤(‘시골선비 조남명’), 산대가면극 처용무(‘아름다운 남자’) 등 전통연희를 무대화해왔다.

 

 

어느 시리즈의 연장선에 있나

세르반 2011년 11월, 독일 출신의 연출가 아힘 프라이어가 국립창극단의 세계거장시리즈 첫 번째 주자로 창극 ‘수궁가’를 올린 데 이어 3년 만에 세르반이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세계거장시리즈는 판소리 다섯 바탕과 해외 거장 연출가를 매칭해 창극단의 해외 진출 기반을 모색하기 위해 국립창극단이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 첫 타자인 ‘수궁가’는 서구 연출가가 처음으로 창극을 연출했다는 점과 브레히트의 수제자였던 아힘 프라이어라는 네임벨류로 큰 화제를 모았다. 공연 후에는 프라이어 특유의 가면 활용이나 회화적 연출 기법을 둘러싸고 호불호가 갈리면서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이 국립국악원의 브랜드 공연은 한국적 소재와 악(樂)·가(歌)·무(舞) 일체의 공연 형식을 토대로, 10년 이상 장기 공연이 가능한 중대형 규모의 작품을 개발하는 프로젝트. 소리극으로는 ‘남촌별곡’(1998) ‘시집가는 날’(2002) ‘황진이’(2009)와 제주소리굿 ‘이어도 사나’(2004)가 있었고, 파일럿 형식의 ‘언문외전-한글을 만나다’(2012)가 있었다. 지난해에는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을 기념해 오태석 연출·박범훈 작곡의 소리극 ‘아리랑’이 올랐다. 국립국악원 브랜드 공연을 분류하는 명칭 가운데 ‘음악극’은 올해 ‘공무도하’와 함께 처음 등장했다.



지금의 작품을 택하기 전까지

세르반 “국립창극단을 통해 처음 ‘흥보가’를 제안받았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봐도 지극히 한국적인 소재에 흥미를 느낄 수 없어 중도 하차 의사를 전했다. 이후 국립창극단이 다시 제안한 ‘춘향가’를 보고는 마음에 와 닿는 바가 있어 택하게 됐다. 이전에 피터 브룩에게 창극 연출 제안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가 거절했다니 안타까울 따름. 최종으로 창극 연출을 수락하면서 내세운 조건은 딱 하나였다. 공연장은 해오름극장이 아닌 꼭, 달오름극장이어야 한다는 것. 왜냐고? 내 연출은 디테일이 중요하니까!”

 

 “처음에 국립국악원에서 조선 시대 실학자인 홍대용에 관한 이야기를 음악극으로 만들 생각이 없는지 이야기했다. 홍대용에는 흥미가 생기지 않아 거절했다. 대신 국립국악원과 작업을 한다면 ‘공무도하’를 하고 싶다는 말을 건넸다. 이런 역제안이 옛날 같으면 어림도 없었을 텐데 공교롭게 지금 국립국악원이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추상적이지만 나름대로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서인지 지금 같은 기회를 준 것 같다.”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

세르반 “사랑을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부패한 사회의 불의에 맞서 싸우는 한 여성의 모습이 현대적인 동시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주제라고 생각했다. 극은 과거나 미래가 아닌, 바로 지금 벌어지는 것이다. 현대적이라는 것 자체가 현재와 관련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즉, 현대적이라는 것은 훌륭한 이야기와 오늘날 살아 있는 관객들 사이에서 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관객에게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지, 관객이 무엇에 흥미를 느끼는지에 관한 질문이 가장 중요하다.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처럼 되돌아보는 것이 아닌, 어떻게 텍스트를 살아 있게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의 평범한 세상에는 영웅이 필요하다. 자신의 신념을 꾸준히 이어가고 타협하지 않는 춘향이 바로 좋은 예다. 부패한 정치인들과 비즈니스 세계에서 그녀는 순수함을 잃지 않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싸운다.”

 

 “한국 공연예술사나 한국 연극사에는 고대극 레퍼토리에 대한 기록이 없다. 많은 전문가들이 한국 연극사를 1910년부터 잡는데, 그것은 ‘서구 연극 이식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연극이 없는 민족이었느냐? 그렇지 않다. 그 형태나 모습이 다를 뿐이었지, 우리 문학사의 고대 시가들을 살펴보면 여러 작품 속에 ‘극’이 내재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공무도하가’ 안에는 여옥의 노래와 고대 현악기인 공후인 연주, 백수광부라는 등장인물과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 강을 건너려는 자와 그를 말리는 자가 빚어내는 갈등 상황이 존재한다. 즉, 악가무시사(樂歌舞詩辭)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총체극이자 모든 극적 요소들이 응축된 우리의 고대극인 것이다. 이에 대한 복원의 꿈을 2007년부터 키워왔다. 한국 연극의 원형을 찾으려면 지금의 서구적 틀 속에 갇힌 개념으로는 안 된다는 걸 느꼈다. 그런데도 연극은 갈수록 신화와 역사와 전통을 밀어내고 개인사적인 일상의 언어에 매달리는 현상을 보면서 나는 다른 방향에서 우리 극에 대한 탐색을 시도해왔다. 이번 국립국악원과의 만남은 지금까지의 극작·연출 작업의 종합 정리 편이 될 것 같다.”

 

 

극 중 이야기 전개 방식에 관하여

세르반 “춘향이 옥에 갇힌 데에서 첫 장면이 시작된다. 춘향이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그동안의 모든 이야기를 떠올린다. 춘향은 사랑이라는 숭고한 가치에 스스로를 투신한 인물로 그려진다. 여기에서 이몽룡이 보여주는 사랑의 방식은 중요하지 않다. 오랜 시간을 이겨온 끝에 얻는 승리를 보여주는, 우리가 이상을 삼을 수 있을 만한 가치를 지닌 인물이 바로 춘향이다. 극을 보면 알겠지만 각색 과정에서 향단이가 생략됐다. 춘향처럼 가난한 처지의 사람에게 하녀가 있다는 건 오늘날의 시선에서 보면 부자연스러운 일이니까. 무엇보다 마지막 장면, 휠체어에 앉아 있는 춘향의 모습을 두고 관객들이 자신만의 해석을 만들어내길 바란다.”

 

“개인적 일상에서 역사적 현실, 그리고 우주적인 신화까지 아우를 수 있는 극적 세계를 ‘공무도하’를 통해 보여줄 생각이다. ‘백수광부는 왜 강을 건너려고 했을까?’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개인적으로 백수광부가 강을 건너는 이유를 크게 다섯 가지로 봤다. 자기 자신이 싫어서, 강 건너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 새로운 세상을 향해서, 문명이 아닌 자연과 우주성을 추구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죽음. 이 중에서 두 가지 이유를 에피소드로 풀어내 옴니버스식으로 구성했다.

첫 번째는 나로부터 이별하고 진정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샐러리맨의 이야기다. 새로 이사 간 아파트의 동호수를 기억하지 못하고 헤매는 사내가 등장하는데, 사실 이건 내 실제 경험담을 가져온 것이다. 개인주의에 갇혀 파편화된 정체성을 갖고 현대를 살아가는 사내를 통해, 5,000년 전 역사와 신화가 거듭됐기에 그가 오늘날 존재할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래서 사내는 이승을 뒤로한 채 아내와 딸이 기다리는 전생으로 간다. 두 번째는 현재와 동시대 속에서 사랑과 이별하고, 사랑을 찾아가는 소설가의 이야기다. 그는 취재차 방문한 연변에서 만난 북한 여자 순나와 결혼한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녀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순나가 북한에 끌려갔다고 생각한 김 작가는 북한 땅으로 가기 위해 강을 건넌다. 마지막 장면에 백수광부와 그의 아내가 등장하는데 동양의 순환 논리에 따른 이야기가 전개된다. 무엇보다 동시대 이야기인 ‘공무도하’를 통해 관객들이 정서적인 교감을 나누고 웃고 우는 경험을 하길 바란다.”

 

 

연습 과정에서 배우들에게 특별히 요청한 것

세르반 “연기에 있어 그들 스스로가 모든 것을 시도해보길 요구한다. 한편으로는 즉흥적으로 자유롭고, 다른 한편으로는 절제하는 동시에 규칙적이길 바란다. 어떻게 해야 스스로를 조화로운 악기로 사용할 수 있겠는가. 감성이 몸과 마음으로 이어질 때 완전한 배우라 불릴 수 있을 것이다. 국립창극단 단원들로부터 익숙한 무언가에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열정을 발견했다. 내 아이디어에 그들의 호기심과 관심이 더해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지금까지 판소리는 소리꾼이 심청이면 심청, 춘향이면 춘향 그 이야기를 좇아간다. 모든 출연자가 이야기 흐름에 헌신한다. 판소리 완창을 하면 그 이야기를 8시간 동안 이어가는 셈이다. 이번 음악극은 스토리가 단순하다. 때문에 배우들 각자 극 중 운명에 처한 개인의 입장에 집중시키면서, 판소리에서 화자가 3인칭 화법으로 소리하는 부분을 1인칭 독백으로 바꿔 부르게 했다. 남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가 될 때, 관객들이 훨씬 호소력 있게 받아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더불어 각기 다른 소리 특유의 미적인 음감은 살리되 세세한 테크닉은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예를 들어 음악극에서 갑자기 서도소리 스타일대로 나오면 드라마 해석이 안 된다. 테크닉보다 소리하는 사람의 진실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번 무대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

세르반 “지금까지 영상을 쓴 적이 거의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영상이 무대에서 많이 활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는 영상을 적극적으로 쓸 생각이다. 이 영상들은 무대 위에 펼쳐지는 상황들과 유기적으로 어우러져 새로운 무대 형식을 만들어낼 것이다. 또 전반적으로 추상적인, 암시하는 무대가 될 것이다. 검정 톤의 차가운 철골 구조물이 등장하는 반면, 이야기의 신화적인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 물이나 모래를 사용하는데, 이러한 자연의 요소들이 영상과 융합되어 좋은 대조가 이뤄지길 바란다. 지금까지 춘향과 매칭되어온 핑크색을 상상하고 있다면, 이번 작품에서 놀랄 준비를 해도 좋을 것 같다. 안무는 안은미가 맡았다. 정말 독특한 그녀의 재능뿐 아니라 자유로운 영혼을 좋아한다. 때문에 함께했을 때 좋은 결과물이 나오리라 기대된다. 평소 나와 매우 다른 어휘를 가진 예술가와 함께 작업하는 것을 즐긴다. 나에게 필요한 창의적인 긴장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인데, 이번에도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판소리를 기본으로 하되 정가·경서도민요·남도소리·범패 등 국악원이 보유하고 있는 모든 소리가 다 등장한다. 무대는 경사면과 함께 중앙에 S자 형태의 경계가 등장할 예정이다. 극의 흐름상 강이 될 수도 있고 남북 간의 경계 혹은 이승과 전생을 오가는 경계를 상징하게 될 것이다. 시·공간이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이에 따른 전환은 특별한 무대장치보다 무대 양옆에 영상으로 처리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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