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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전주세계소리축제 현장 취재기
잃어버린 관객을 찾아서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11/1/2014 |   지면 발행 ( 2014년 11월호 - 전체 보기 )




지난 10월 8일부터 12일까지 열린 전주세계소리축제는 타악 주자 박재천 집행위원장의 취임에 이어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변화를 위한 포부 속에서 관객을 위한 배려는 어느 정도였을까


10월 9일 오후 2시, 전주한옥마을 내 전통문화관 별채에서 이소연의 ‘적벽가’를 듣고 있었다. 한글날에, 한자투성이이며, 판소리 다섯 바탕 중 유일하게 중국을 배경으로 한 ‘적벽가’를 듣는다는 건 남다른 맛이 있었다.

무엇보다 즐거운 건 ‘국립창극단 단원 이소연’이 아닌 ‘소리꾼 이소연’을 만난다는 것이었다. 국립창극단의 ‘수궁가(Mr. Rabbit and the Dragon King)’ ‘배비장전’ ‘옹녀’ 등의 무대에서 보아온 그녀는 전계열의 북장단만을 벗 삼아 자신이 갈고닦은 소리를 올곧게 선보이고 있었다. 어쩌면 창극과 판소리 무대는 전주콩나물국밥에 비유할 수도 있겠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수란(水卵)을 풀어 달걀의 고소한 맛과 국물이 어우러진 국밥을 먹는 것이 창극을 보는 맛이라면, 맑은 국물을 떠먹는 건 무대에 홀로 선 명창의 생(生)모습을 접하는 맛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계열의 북장단은 국밥을 한 그릇 비운 후, 들이켜는 모주(毋酒)의 달달함과 같고!

하지만 삼국의 패전을 그린 전쟁터는 ‘적벽가’의 사설 속에서만 있지 않았다. 이곳은 전쟁터의 소리를 방불케 했다. 마당을 둘러싼 담 너머 전주천(全州川)에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군사싸움타령’ 대목에서 ‘싸움’이라는 말이 사설 끝에 반복될 때마다 포클레인이 ‘쾅’ ‘우르르’ 소리를 냈고, 덤프트럭의 ‘빵빵’ 소리가 또렷이 들려왔다. 그리고 공사 소리가 좀 조용해지면 길 건너에 육중하게 자리 잡은 국립무형유산원에서 풍물 가락이 어김없이 들려왔다. 귀의 중심을 잘못 잡으면 고수의 장단 너머 길 건너 태평소 소리가 들렸고, 다시 소리에 집중하려면 포클레인 소리가 들렸다. 길놀이와 공사··· 이 전쟁 같은 소리 속에서 이소연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마디로 국립창극단 최고의 스타가 뿌리를 찾아온 예향에서 이런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변화의 기로에 나타난 복병

이 이야기를 왜 하는가? 이렇게 생각해보자. 이소연의 소리가 전주세계소리축제라면, 밖에서 들려오는 여러 소리는 지금의 전주세계소리축제가 해결하거나 안고 가야 할 숙제의 상징이라고.

올해로 13년을 맞이한 전주세계소리축제는 변화의 기로를 달려왔다. 과거와 현재를 공존시키기 위한 주최 측의 노력은 집행위원장을 누구로 설정하는가로 표상되었다.

지금까지 시급했던 건 국내 점령과 국악축제로서의 위치 확보였으리라. 뮤지컬계의 박칼린과 대중음악 작곡가 김형석이 공동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동안 전주세계소리축제는 ‘대중성’을 확보했다. 더 정확히는 수혈··· 전주세계소리축제에 대중가수가 초빙되면서 이른바 ‘대중’이 몰린 것도 사실이다.

그럼 올해 5월에 취임한 타악 주자 박재천은 무엇을 상징할까?

일단 지난해 개막 공연 ‘아리아리랑 소리소리랑’ 총지휘 및 연출을 맡은 후 축제의 프로그래머로서 참여와 성공은 올해 그의 영입에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 온 13명의 여성 보컬을 한자리에 묶은 그 무대에서 박재천식 특유의 ‘유연성’이 빛을 발했던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그 유연성은 드럼에 한국 전통 타악 연주법을 결부시키기 위해 그가 고안한 ‘코리안 그립(Korean Grip)’과도 닮아 있었다.

박재천의 취임에 전주세계소리축제의 큰 변화를 예상했다. 물론 음악적 변화였다. 하지만 전주에 도착해보니 그가 풀어야 할 것은 음악보다 음악 외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전주한옥마을의 변화, 다른 하나는 국립무형유산원의 존재였다.

10월 1일 개원한 국립무형유산원의 개원 축제와 전주세계소리축제가 겹쳤다. 한옥마을 골목을 지날 때 두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경쟁하듯 귀를 덮쳤다.

발걸음을 돌려 국립무형유산원을 찾아가봤다. 건물은 잘빠졌다. 전주한옥마을에는 없는 400석 규모의 대공연장과 200석 규모의 소공연장을 갖췄다. 지금 전주세계소리축제는 약 7킬로미터 떨어진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도 공연을 소화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국립무형유산원이 전주한옥마을축제의 또 다른 축제 공간이자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의 대안 공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국립무형유산원에 도착해보니 전주세계소리축제 측의 셔틀버스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한국소리문화의전당으로 가야 하는 불편함이 더 와 닿았다. 2015년부터는 전주소리축제와 국립무형유산원이 콘텐츠를 공유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축제의 중심은 관람객의 편의다. 하지만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운영 주체는 전라북도라는 점과 국립무형유산원은 문화재청이 운영한다는 것에서 그 합의점이 쉽게 도출되지는 않을 듯싶다. 정부기관과 지방자치단체의 상생, 한옥과 현대식 건물이라는 공생에 대한 고민이 숙제 아닌 숙제다. 그래서 지금 박재천 집행위원장이 모색해야 하는 건 이런 변화와 관객의 편의이지 자신의 이름을 내건 개막작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중요한 것은 관객인류학

아는가?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는 음악가로부터 받는 ‘기’만큼 관객으로부터 받아가는 ‘기’가 있다. 이는 즐거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9일 오전 11시, 마스터클래스가 열렸던 전통문화연수원 별채로 가보자. 별채 입구에서 “아, 이렇게 좁은 데서 하면 어떻게 하라는 거야” 하며 한 관객이 나왔다. 그러자 다른 관객이 얼른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갔다. 한 사람의 불만과 한 사람의 재빠른 발걸음은 이 클래스의 인기를 대변하고 있었다.

폴란드의 마리아 포미아노프스카는 폴란드 민속악기인 플록 피들 연주를 선보이며 설명을 곁들였다. 바이올린처럼 생긴 플록피들은 해금처럼 무릎에 올려놓는 피들(Fiddle) 계통의 악기였다. 관람객들이 유럽의 이 낯선 악기에 보내는 호기심의 시선은 예상외로 뜨거웠다. 통역과 사회를 맡은 국민대 김희선 교수의 “전주의 관객은 수준이 너무 높다”라는 소감이 와 닿았다.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시간이 되자 “폴란드에도 한국의 정악과 같은 궁중음악이 있나요?” “이렇게 좋은 소리를 내는 악기가 왜 맥이 끊겼는지… 이유가 무엇인가요?”와 같은 심도 깊은 질문이 이어졌다.

이렇듯 ‘마스터클래스’가 관객의 뜨거움과 열의를 발견한 시간이었다면, ‘판소리 다섯 바탕’은 관객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역시 예향(藝鄕)은 예향이었다. 김연 명창의 ‘흥보가’가 있던 같은 날 오후 1시의 전통문화연수원 동헌. 앞자리는 귀명창들의 차지였다. 방 안이 가득 차 툇마루에 방석을 깔았고, 툇마루가 넘치자 마당의 임시 의자로 관객이 몰렸다.

“불난 집에 부채질, 아 밴 부인은 배통이 차고, 오대독자 불알 까고, 수절 과부는 겁탈하기 (···…) 다 된 혼인 바람 넣고”라는 사설에 나타난 놀부의 심술을 읊는 대목에서 관객들의 추임새와 조용한 어깨춤이 동헌을 가득 채웠다. 누구는 옆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심하며 부지런히 촬영하고, 누구는 배포된 책자의 사설을 부지런히 따라가고 있었고, 누구는 부지런히 추임새를 넣으며 관객으로서 적극성을 내세웠다.

전주세계소리축제가 13년 동안 만든 것은 전주세계소리축제를 찾는 ‘관객’이다. 이번 축제에서는 이런 관객에 대한 배려와 고민이 잘 보이지 않았다. 전주가 갖고 있는 전통과 현대의 상업화에서 오는 이득, 지방자치단체와 정부기관이 각자의 입장에서 내세운 명분과 논리만이 보였을 뿐이다. 따라서 박재천 집행위원장은 음악 외에도 풀어야 할 것이 많다. 그의 ‘코리안 그립’이 한국과 서양의 감수성을 아울렀듯이 전주세계소리축제를 채우는 음악과 아우르는 행정을 실현하고, 예술가와 관객을 잘 감싸 안아 하나로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진 전주세계소리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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