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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렐조카주 발레의 ‘백설공주’
현대적 감각으로 무장한 고전
글 김태희 11/1/2014 |   지면 발행 ( 2014년 11월호 - 전체 보기 )




프렐조카주의 감각적인 안무로 재탄생한 ‘백설공주’는 더 이상 아이들만을 위한 동화가 아니다. 
이제, 장 폴 고티에의 의상과 말러의 음악으로 빛나는 작품을 만날 시간이다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무대로 내한 때마다 화제가 되었던 프랑스 안무가 앙줄랭 프렐조카주가 다시 한국을 찾는다(11월 14~16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1996년 발레 뤼스에 대한 오마주인 ‘퍼레이드’ ‘장미의 정령’ ‘결혼’으로 국내에 이름을 알린 그는 2003년 서울세계무용축제 폐막작으로 초청된 ‘헬리콥터’ ‘봄의 제전’으로 무용 관객들 사이에서 입지를 넓혀왔다. 2012년 국내 무대에서 선보인 ‘그리고, 천 년의 평화’에서는 다양한 오브제를 사용해 혼돈스러운 세상 속 인간의 두려움과 불안을 그려냈다. 올해는 대표작 ‘백설공주(Blanche Neige)’를 한국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다양한 주제를 폭넓게 다뤄온 프렐조카주의 작품 세계에 한 획을 긋는 작품이다.


‘백설공주’를 두고 그저 한 편의 동화라고 생각해왔다면 이번 무대는 생각의 전환을 불러일으키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림형제의 원작을 바탕으로 작품을 재구성한 프렐조카주는 널리 알려진 ‘백설공주’의 상징적 의미들을 어린이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이야기로 재탄생시켰다. 티에리 르푸르스트의 무대와 장 폴 고티에의 의상이 드라마틱한 요소들로 들어찬 무대 위에 말러의 음악이 흐르고, 프렐조카주는 백설공주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힘을 합쳐 탄생한 이 작품은 세계 각지에서 호평을 받으며 2009년 프랑스 언론연합 주최의 ‘글로브 드 크리스탈’에서 최고의 무용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고전발레에 현대적 감각을 더한 안무

클래식 발레와 컨템퍼러리 댄스의 경계를 오가는 앙줄랭 프렐조카주의 춤 스타일은 유년기의 경험에서부터 시작된다. 알바니아인이지만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발레를 처음 배운 그는 독일 표현주의를 접하면서 컨템퍼러리 댄스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머스 커닝엄·도미니크 바구에와 같은 대가들에게 다양한 테크닉을 배웠다. 낭만적인 발레 테크닉과 표현주의 기반의 섬세하고 감각적인 춤 언어, 공간에 대한 추상적인 접근법과 동선의 사용을 비롯한 모든 배움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져 지금의 스타일을 형성하게 됐다.

한편으로 그는 정치·사회·성·종교·철학 등 다양한 주제를 바탕으로 사회의 목소리와 춤의 서정미를 적절히 조합하는 작업을 해왔다. 사회의 단면을 거침없이 풍자하기도 하고, 때론 여성과 소수자의 편에 서기도 한다. 이처럼 다양한 주제를 자신의 작품으로 풀어내는 작업은 텍스트를 독창적으로 재구성하는 그의 탁월한 해석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백설공주’가 그런 작품의 하나다.

프렐조카주의 ‘백설공주’는 공주를 잉태한 생모가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생모는 숨을 거두지만 공주는 왕의 품에서 무사히 성인이 되고, 어느덧 사랑을 알아가는 여성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첫눈에 반한 왕자와 추는 세 번의 듀엣은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연인의 분위기가 흠씬 풍기는데, 발레 동작을 기본으로 음악의 흐름을 타고 상대와 부드럽게 대화하는 듯하다. 천천히 날아오르듯 들어 올린다거나 아이가 장난을 치는 듯한 움직임들이 순수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일곱 난쟁이와 동그랗게 둘러앉아 놀이를 하는 장면 역시 동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즐거움을 선사한다.

순백색으로 대표되는 백설공주의 ‘선’과 확연히 대비되는 것이 바로 계모의 ‘악’이다. 발길질 한 번에 백성들이 우르르 쓰러지는가 하면, 공주를 찾아가 독이 든 사과를 입안에 쑤셔 넣는 장면은 ‘악’의 절정을 보여준다. 골반을 흔들거나 다리를 높게 올리는 동작들이 사악한 캐릭터의 모습을 대변한다. 특히 마법의 거울을 보며 이야기하는 장면에선 누가 실제이고 복제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두 사람이 함께 동작을 소화한다. 독보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는 그녀는 막이 내리기 직전까지도 달궈진 구두를 신고 광란의 춤을 추며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각 분야 최고의 예술가들이 완성한 무대

무용수들의 춤만이 아니라 무대 세트·의상·음악 역시 이번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거대한 마법의 거울이 등장하는 장면과 몇 개의 기둥에 영상을 활용해 끝없이 펼쳐진 숲을 보여주는 장면은 동화적 상상력을 구현해냈다. 일곱 난쟁이들이 광부라는 점에 착안해 암벽을 타듯 무대의 뒷벽에 매달려 내려오는데, 로프에 매달려 점프를 하고 공중제비를 돌며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화제가 되었던 장 폴 고티에의 의상은 작품에 현대적 감각을 더했다. 오트쿠튀르의 형식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면서 한편으로는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연계한 패션을 선보여왔던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무용 의상을 처음으로 제작했다. 당시 ‘백설공주’는 디자이너와 안무가가 공동 작업을 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공연으로 기록됐다. 빨간 사과와 피를 연상케 하는 붉은색 밑단의 스커트에 하이힐을 갖춘 계모의 의상은 캐릭터의 성격을 단번에 보여주면서 에로틱하고 잔혹한 느낌을 한껏 살려냈다. 특히 기저귀를 연상시키면서도 여성적 매력을 은밀하게 보여주는 공주의 의상은 평론계의 핫 이슈로 떠올랐다.

안무부터 무대와 의상까지 최고의 예술가들이 함께한 이 작품의 마지막을 완성한 건 말러의 음악이다. 심오한 사상과 인생이 담긴 말러의 작품을 다루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지만, 프렐조카주는 말러의 여러 교향곡 가운데 과감히 자신의 작품에 맞게 곡들을 발췌하는 모험을 했다. 여기에 뉴뮤직 그룹 79D의 사운드 디자인이 더해지면서 ‘백설공주’에 꼭 맞는 음악이 완성됐다. 백설공주가 깨어나 왕자와 듀엣을 추는 장면에 흐르는 음악은 가장 아름다운 선율 중 하나다. 아내 알마를 향한 말러의 사랑 고백으로 유명한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가 애절하게 흐르며 백설공주의 결말을 장식한다.

사진 Jean Claude Carbon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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