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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기대 속에 피어난 음악의 꽃
글 원종원(뮤지컬 평론가·순천향대 교수) 10/1/2014 |   지면 발행 ( 2014년 10월호 - 전체 보기 )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가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높은 인지도나 스타 마케팅보다 더 뛰어난, 다채로운 매력의 뮤지컬 넘버들 때문이다




문화 간 커뮤니케이션 현상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일이 많다. 뮤지컬도 마찬가지다.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는 훌륭한 글로벌 뮤지컬 시장의 역할을 하지만, 그곳에서 인기를 누린 작품이라고 반드시 다른 지역에서 비슷한 흥행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각각의 시장에서 상이한 결과가 관찰되는 사례가 더 빈번하다.

수십, 수백억원의 투자가 오가는 대규모 상업 프로덕션의 투자자나 제작자에겐 여간 불안한 일이 아닐 수 없지만, 문화 산업의 매력은 이런 다양성과 복잡성에서 오히려 빛을 발하는 경우를 왕왕 목격할 수 있다. 예컨대 복기(復棋)를 하며 승패의 요인을 분석해볼 수는 있어도, 혜안을 통해 시장의 성패를 예측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역으로 말하면 주도면밀한 시장 환경과 흥행 요인의 분석, 상대성과 상이성을 따진 후 현지의 상황과 사정을 고려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변화의 모색은 새로운 흥행 신화의 창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도 될 수 있다. 즉, 인지도가 높은 흥행 뮤지컬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집중받지 못하거나 신통찮은 매출의 프로덕션일지라도 현지의 정서와 문화를 적절히 반영한 콘텐츠라면, 그리고 이러한 상대성을 근간으로 과감한 개작이 허용된 실험성이 담긴 작품이라면 오히려 도전해볼 만한 가치를 찾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더 진화된 라이선스 뮤지컬 시장의 등장이 기대되는 이유다.

공연보다 더 사랑받는 뮤지컬 넘버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Jekyll&Hyde)’는 그런 의미에서 곱씹어볼 만한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선 맥주 광고에서조차 ‘지금 이 순간’을 노래하는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지만, 이 작품이 애초부터 다른 나라에서 메가 히트를 기록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1990년 미국 휴스턴에서의 개막을 필두로 수년에 걸친 미국 투어 프로덕션의 운영 등 여러 산고(産苦) 끝에 마침내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가 브로드웨이에 입성했던 것은 1997년의 일이다. 지금은 제럴드 손펠드 극장이라 개명된 플리머스 극장에서였는데, 극본과 작사가로 참여했던 로버트 쿠치올리가 타이틀롤을 맡고, 린다 에더가 루시 역, 가수 겸 배우로 다양한 활약을 보인 크리스티안 놀이 에마 역으로 등장했다. 브로드웨이 초연 무대는 거의 4년에 가까운 공연 기록을 세우며 당시 플리머스 극장에서 가장 오래 연속 공연된 작품으로서 명성을 얻게 됐다. 우리나라에서 DVD 타이틀로 유통되던 공연 실황은 바로 이 극장에서의 모습을 담은 영상물이다.

플리머스 극장에서의 공연은 1,543회의 롱런을 기록했지만 사실 영광보다는 상처가 많았다. 평단의 반응도 시원찮았거니와 종연 당시 결국 150만 달러를 상회하는 손실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공연이 장기간 막을 올리며 다양한 인기몰이를 시도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관객들의 호응은 제작진의 기대에까진 미치지 못하는 흥행 실패였던 셈이다. 일일연속극 ‘제네럴 호스피털(General Hospital)’의 인기 탤런트인 척 와그너, 헤비메탈 그룹 스키드로의 리드 싱어였던 서배스천 바크, 그리고 우리나라에선 ‘전격 Z작전’으로 유명한 배우 데이비드 하셀호프까지 등장시키며 스타 마케팅의 효과를 노렸지만 반전을 꾀하기에는 초라한 성과에 그쳤다. 지난 2013년 4월에 다시 시도됐던 마퀴스 극장에서의 리바이벌 공연 역시 당초 목표로 했던 6월까지의 일정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프리뷰를 포함해 40여 회의 공연 끝에 5월에 종연을 맞이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작품의 이름값에 비해 초라한 흥행 실패만 반복된 셈이다.

오히려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쪽은 뮤지컬 넘버다. ‘This Is The Moment’ ‘Confrontation’ ‘A New Life’ 등 주요 등장인물들의 노래는 작곡가인 프랭크 와일드혼의 대중적인 선율과 화음을 전면에 내세워 공연보다도 더 큰 인기를 누렸기 때문이다. 특히 초연부터 무대를 지킨 린다 에더가 부르는 ‘Once Upon A Dream’는 노래 자체로도 엄청난 인기를 모았지만, 수많은 가수에 의해 다시 불리는 리바이벌로도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뮤지컬 공연이 막을 올리기 전이었던 2000년 조수미가 뮤지컬 명곡들을 모아 다시 불렀던 ‘Only Love’ 앨범의 수록곡으로 큰 사랑을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미친 가창력’이라는 별명의 뮤지컬 배우 홍광호의 콘서트 버전 음원도 등장해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다.


▲ This Is The Moment’를 부르는 마티 펠로 ⓒSimon Fowler

수많은 음반, 다채로운 매력을 뽐내다

뮤지컬 넘버의 대중적 인기는 수많은 음반의 탄생을 가져왔다. 우선 1997년 제작된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캐스트가 참여한 앨범이 있다. 이 음반에서는 전술한 작가 겸 배우 로버트 쿠치올리의 음성을 만날 수 있는데, 웬만한 애호가도 깜짝 놀랄 만한 가창력과 표현력이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특히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대립하는 장면을 묘사한 뮤지컬 넘버 ‘대결’은 마치 두 배우가 이중창으로 노래 부르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킬 정도로 완벽한 변신을 이뤄낸다. 원작과 작사가로서 참여로 작품에 대한 속 깊은 이해가 마법에 가까운 캐릭터의 창조로까지 이어진 느낌이다.

이색적인 음원으로는 콘셉트 앨범도 있다. 콘셉트 앨범이란 공연이 본격적인 막을 올리기 전에 미리 음반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아무래도 멜로디에 익숙하다 보면 작품을 감상하는 데 용이하기 때문에 대중들이 선율을 앞서 접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일종의 마케팅 전략인 셈이다. ‘지킬 앤 하이드’의 콘셉트 앨범은 1990년에 처음 만들어졌다. 특히 이 콘셉트 앨범에서는 주인공으로 ‘레미제라블’의 장발장 역으로 전설이 된 배우 콤 윌킨슨이 등장하는데 특유의 미성을 아낌없이 선보이며 감미로운 멜로디를 들려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1994년에는 전곡이 수록된 콘셉트 앨범도 선보인 바 있다. 미국에서의 첫 투어 공연 직전에 만든 것으로, ‘고딕 뮤지컬 스릴러’라는 부제가 붙은 두 장짜리 음원이다. 흑백 톤의 지킬 박사 이미지 아래로 하이드 씨의 모습이 붉게 찢겨나간 것처럼 장식된 앨범의 재킷이 무척 인상적인데, 호주 ‘오페라의 유령’의 주역이자 ‘레미제라블’의 석 장짜리 컴플릿 앨범에서 학생 혁명군 앵졸라스 역으로 나왔던 앤서니 왈로의 육성을 만날 수 있어 즐겁다.

음반은 여럿 있지만 늘 에마는 린다 에더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음원에서 그녀는 이 역을 맡아 등장한다. 프랭크 와일드혼에게 린다 에더는 음악의 뮤즈였다는 말도 있다. 실제로 그녀는 와일드혼의 여러 작품에 주연으로 등장했었고, 1998년에는 백년가약을 통해 부부의 연을 맺기도 했다. 비록 6년여 후인 2004년 이혼으로 남남이 됐지만, 음반을 통해 그녀의 노래를 듣다 보면 스타 작곡가와 아름다운 음색을 지닌 여배우 간의 애틋했던 사랑이 어렴풋이 느껴져 흥미롭다.

각국어로 제작된 음반도 많다. 벨기에 앤트워프 캐스트가 네 곡을 부른 미니 앨범이나 독일 브레멘·스페인 마드리드·오스트리아 빈·일본 도쿄·체코 프라하·스웨덴 스톡홀름 등의 캐스트를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바쁠 정도로 수많은 음반이 세계 각지에서 제작됐다. 특히 독일어 버전 앨범은 1999년 독일의 대중음악 차트인 ‘오피치엘레 톱 100’에서 앨범 차트 92위에 오르는 진기록을 수립한 적도 있다.

‘조승우 신드롬’을 이어가는 국내 음반

국내에서 제작된 음반도 많다. 먼저 2004년에 만들어졌던 한 장짜리 앨범이 있다. 조승우와 류정한이 타이틀롤로 등장하고, 김소현이 에마를, 최정원이 루시를 맡았다. 외국과 달리 스타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우리나라의 여건에 맞추려 여러 배우의 노래가 뒤섞여 등장하는 별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지금 이 순간’은 조승우가 노래하고, ‘내가 걷는 길’은 류정한이 노래하는 식이다. 일관된 흐름에 맞춰 작품의 감상을 도와주는 일반적인 경우와 달라 다소 어지럽다는 느낌도 들지만, 멋진 배우 만나기를 좋아하는 국내 뮤지컬 산업의 팬덤 현상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움을 미루게 된다.

일관성 있는 뮤지컬 음원으로서 매력을 느끼고 싶다면 2006년에 발매된 두 장짜리 우리말 앨범이 더 낫다. 여전히 루시 역으로 이영미와 김선영이 번갈아 등장하는 혼란은 있지만, 주인공인 지킬 박사와 하이드 역은 조승우만 단독으로 참여한 음원이기 때문이다. 에마의 노래 역시 단독 캐스트인데, ‘오페라의 유령’의 히로인인 이혜경의 목소리로 감상할 수 있다. 이 음원은 컴플릿 앨범의 형식을 띠고 있어 공연을 봤던 관객이라면 무대를 연상해가며 차분히 감상하기에도 좋다. 특히 국내 초연 당시 예매 개시 몇 분 만에 서버를 다운시켜버렸다는 ‘조승우 신드롬’을 경험했던 관객이라면 새삼 그때의 열기를 다시 느낄 수 있어 더 반가울 것이다. ‘지킬 앤 하이드’의 마니아라면 놓치기 너무 아쉬운 경험이다.

글 원종원(뮤지컬 평론가·순천향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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