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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 하림과 문학평론가 정여울
노마디즘에 빠진 예술가들
글 김호경 기자 10/1/2014 |   지면 발행 ( 2014년 10월호 - 전체 보기 )



하림과 정여울은 보이지 않는 목적지를 향해 걸으며 노래하고 글을 쓴다. 살아있는 문화를 온몸으로 느끼고 그로서 새로운 자아를 찾는 노마드(유랑자)의 삶은 생명력 있는 예술을 만든다




공간이 주는 힘은 실로 대단하다. 지난 9월 늦더위로 뜨겁던 어느 날, 음악가 하림과 문학평론가이자 작가인 정여울이 하림의 작업실에서 처음 만났다. 음악을 만드는 남자와 글을 쓰는 여자는 서로 어색한 첫인사를 건네며 마주 앉았지만 아늑한 조명 아래 기분이 좋아지는 음악을 함께 들으며 점점 마음을 열었다. 정여울은 “시간은 사람을 바꾸지 못해도, 공간은 사람을 바꾼다”고 말했고, 하림은 “공간의 이동으로 달라진 내 모습을 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여행에서 영감을 얻는다는 것이다. 하림은 대중음악·월드뮤직·국악을 작곡·연주하는 음악가이다. 음악인형극 ‘해지는 아프리카’, 월드뮤직 퍼포먼스 ‘집시의 테이블’ 등 독특한 형식의 공연을 개최해왔다. 지난 7월에는 tvN ‘국악스캔들 꾼’에 출연해 김덕수와 즉흥 소리 한마당을 선보였고, 9월부터는 한 달에 한 번 원일/국립국악관현악단이 선보이는 ‘좋은 밤 콘서트-야호’에서 해설과 진행을 맡고 있다. 정여울은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는 동시에 ‘마음의 서재’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등 여러 분야의 책을 집필하여 폭넓은 독자층을 형성해왔다. 올해 초에는 그녀의 오랜 경험담과 경험적 지식이 만난 인문학 여행 에세이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나만 알고싶은 유럽 Top10’을 출간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1976년생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10년 전으로 세월을 거슬러 첫 여행에 대한 추억담을 꺼내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여울 첫 여행은 스물아홉 살 겨울에 친구들과 함께 떠난 유럽 여행이었어요. 굉장히 힘든 시기였는데, 여행이 많은 걸 변화시킨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뭔가 돼야만 한다는 압박감, 그마저도 서둘러야 한다는 생각이 제 자신을 짓눌렀던 것 같아요. 주입된 고통 속에서 벗어나 순간의 즐거움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됐어요. 훌훌 털어버리고 내 자신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죠. 이제는 삶이 되어버렸지만 시작은 이때부터였어요.

하림 신기하네요. 저도 스물아홉 살 겨울에 처음으로 유럽 여행을 갔어요. 어쩌면 마주쳤을지도 모르겠네요.

정여울 저는 스페인·독일·네덜란드에 갔어요.

하림 (웃음)저도요. 스스로 돌아본 20대가 마음에 들지 않아 벌을 주기 위해 그곳에 갔어요. 서른이 되는 첫날을 홀로 독일에 있는 유스호스텔에서 보내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결국 그 계획은 무산됐어요.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갑자기 아무런 의미가 없는 때를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추운 겨울에 가난하게 지내다 예정보다 조금 일찍 돌아왔어요. 제 여행은 방황의 시기에 시작됐죠.

예술적 영감을 얻는 나만의 여행법

정여울 여행을 가기 직전까지 열심히 책을 읽다가 갈 때는 빈손으로 가요. 예전에는 책을 스무 권씩 싸 들고 갔었는데, 그러다 보니 거기까지 가서도 책 속에 갇히게 되더라고요. 현지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가장 좋아요. 얼마 전 뮌헨에서 프라하로 가는 기차에서 현지인인 할머니 한 분을 만났어요. 그분은 틈날 때마다 아시아에 간다고 하더군요. 저는 어떻게든 유럽에 가기 위해 애를 쓰는데 말이죠. 먼 곳에 대한 막연한 동경 같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웃었어요. 이런 경험들이 저에게는 자양분이죠. 언어를 다 알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쓰는 인사말은 알아가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친근하게 다가가면 그들도 마음을 여니까요.

하림 맞아요. 그래서 저는 그 나라 노래를 외워 갑니다. 같이 동화되기 위해서요. 계획 없이 떠나는 여행을 주로 해왔어요. 플라멩코가 듣고 싶어 무작정 스페인에 간 적도 있죠. 며칠 동안 한참을 헤매다 결국 공연을 딱 한 번밖에 못 봤어요(웃음). 아일랜드에서는 한 할아버지가 서쪽으로 가보라고 해서 서쪽으로 마냥 가기도 했어요. 그곳에서 또 좋은 음악을 만났죠. 공부하고 준비해서 간 여행도 물론 의미가 있겠지만, 무작정 가서 그곳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어요. 예를 들어 누군가 우리나라에 오면서 전통문화를 보겠다는 준비를 한다면 이제는 의미가 퇴색된 인사동으로 가겠죠. 그런데 무작정 한국에 와서 자연스럽게 국악을 따라가다 보면 전주·광주에 다다를 거예요. 그게 낫지 않나요.

정여울 침묵하는 여행도 의미가 있어요. 모국어의 감옥이 굉장히 무서운 것이거든요. 여행을 가면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도 고요하게 느껴져요. 못 알아들으니까. 혼자 고요하게 헤르만 헤세가 태어난 곳이나 카프카의 무덤 같은 곳을 돌아다니며 시간에 대해 생각하기도 해요. 책에서 봤던 수백·수천 년 전 그곳과 현재의 그곳은 달라요. 시간의 차이를 느끼는 게 좋아요. 찬란했던 것들이 폐허로 변해 있는 것을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죠.

하림 동감해요. 기원전에 지어진 건물을 보고, 원시시대에 그려진 벽화를 만져보면서 시간에 대한 개념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고민했어요. 예이츠의 무덤에 갔을 때는 지우개를 놓고 왔어요.

정여울 지우개?

하림 ‘당신이 썼던 글들, 다 지워줬으면 좋겠어’라는 저만의 퍼포먼스였어요. ‘어차피 다 농담거리 아니야? 쓸데없이 우리 힘들게 하지 마!’라는 의미로요.

정여울 (웃음)

미래의 창작을 위해 현재를 바라보다

정여울 그나저나 하림 씨 노래 들으면서 인터뷰하면 안 되나요?

하림 원하시면 틀어드리죠(웃음).

정여울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 평소에 하림 씨 음악을 들으면서 편안함을 느꼈어요.

하림 여행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세계 여러 나라의 전통음악과 전통악기를 다루게 됐어요. 음악에 대한 목마름이 내면에 있었겠죠.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음악이 있고, 그 음악들이 사람과 근대사를 다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이번에 국립국악관현악단과 하는 ‘좋은 밤 콘서트-야호’ 공연도 그런 의미에서 시작했어요. 다른 나라의 전통음악들도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에요. 근대 이후 새롭게 만들어진 것들이죠. 각 나라에서 전통음악이 사랑받는 것에 비해 국악은 그렇지 못한 게 안타까워요. 이번 공연은 대중성을 띠는 게 가장 큰 목적이에요. 어려운 것을 습득하자는 게 아니라 일단 국악기 소리와 친해지는 것, 국악 사운드와 익숙해지는 것부터 하자는 거죠. 저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더 친숙하고 재미있게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전통음악이 각 사회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내는 것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아요.

정여울 저는 언젠가 여행기를 쓸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지금일 줄은 몰랐어요. 많은 이야기를 책에 써왔지만 여행으로 먹고살기는 싫었거든요(웃음). 제가 자주 여행 다니는 것을 출판사가 알고 먼저 제안을 해왔어요. 책을 보면 작가들의 무덤과 생가, 작품의 배경 등 문학에 대한 내용이 많다는 것을 아실 거예요. 다녀와서 제주도에 머물면서 사진을 들춰보며 집필했어요. 현재 이후 제가 살게 될 어떤 힘든 시간에 여행이 위로가 되기를 기대해요.

하림 적금 들어놓는 거랑 비슷하네요.

정여울 네, 마음에 보험을 드는 거죠.

하림 그나저나 스물아홉 살의 이야기로 시작해 서른아홉 살의 이야기를 하다니 오늘의 대화가 의미 있게 느껴지네요.

정여울 나이를 자꾸 강조하지 마세요(웃음). 사실 저는 국내 여행이 정말 하고 싶어요. 지방에 가서 시골 아낙네들과 이야기하며 구전문학을 채취하고 민요나 굿을 받아 적는 것, 그런 것에 관심이 있어요. 소리의 형태든 문자의 형태든 남아 있는 모든 말의 잔치를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의 형태로 남겨두고 또 그것을 공유하려고 몸부림치는 것, 그게 작가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서사 무가(이야기가 있는 무당들의 노래) 같은 것들을 다루고 싶어요. 우리의 토착성으로부터 우리가 소외돼 있어요.

하림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저는 요즘 진지한 생각을 접어뒀어요.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내가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이 먹고 싶은지, 앉고 싶은지 혹은 서고 싶은지 그런 것들이 겉으로 드러나잖아요. 생각보다 단순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죠. 사람은 대단한 게 아닌 것 같아요. 예술가라는 것도 그렇고요. 예술가들은 항상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는데 많이 덜어내려고 해요. 미래를 준비하는 것보다 현재 바라고 있는 것이 더 중요하게 느껴져요. 요즘에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데 집에서 5분 거리인 작업실을 드나들며 매일 작업실로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 들어요. 조미료를 빼고 먹는 느낌으로 예술에 대한 허영과 미적인 열망을 덜어내고 조금 더 담백하게 자연스러워지려고요.

 

하림은 2001년 데뷔 이후 대중음악·월드뮤직·국악 등 여러 장르를 연주·작곡했다. 2010년 문화 기획사 ‘아뜰리에 O’를 세우고 ‘집시의 테이블’ ‘해지는 아프리카’ 등 독특한 형식의 공연을 개최해왔다. 현재 10년 동안 아프리카에 100대의 기타를 보내는 ‘아프리카를 위한 기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정여울은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는 동시에 ‘마음의 서재’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등 에세이·인문서를 다수 출간했다. 올해 출간된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10’은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음악을 만드는 남자와 책을 쓰는 여자의 대화는 술 한 잔 기울이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순간을 소중히 생각하는 이들과의 대화는 그 자리에 함께한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자극제가 되었다. 이들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지만 흐르는 시간 속 모든 음과 말을 기록하고 또 그것을 나누기 위해 이들은 계속 나아갈 것이다. 채우기보다는 비우는 마음으로, 더 깊은 울림을 전하길.

글 김호경 기자(ho@gaeksuk.com) 사진 심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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