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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경의 마림바 특강
두드림과 울림
글 김선영 기자 10/1/2014 |   지면 발행 ( 2014년 10월호 - 전체 보기 )




한문경은 늘 새로운 연주자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새로운 레퍼토리를 ‘여행’하고, 그 과정에서 음악적 영감을 재료로 ‘요리’하며, 마림바의 음악적 가능성과 주법을 끊임없이 ‘발명’해나가는 연주자다.

풍성한 음들을 담은 마림바 건반을 말렛으로 내려치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도마 위에서 신나게 칼질을 하고 재료를 다듬는 ‘요리사’를 연상케 한다. 한편 ‘여행가’의 모습도 떠오른다. 팔이 닿지 않는 건반을 치기 위해 말렛을 든 손보다도 발을 먼저 움직여 음이 있는 곳으로 부지런히 오고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마림바의 폭은 그녀가 음악을 만들어내는 작으면서도 넓은 반경이자 여행의 반경이기도 하다.

20세기에 들어 타악기는 그 역할을 새롭게 부여받으며 사람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스트라빈스키·버르토크·메시앙·불레즈 같은 작곡가들은 타악기만으로도 음악이 얼마나 다채롭게 채색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타악기 연주자를 위한 더 많은 작품이 작곡되면서 마림비스트들도 그 흐름에 발맞추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만의 주법을 창조하고, 현재의 흐름과 주법을 소화해낼 수 있는 악기를 개발하는 등 새로운 음악의 진화에 부지런히 발맞춰왔다. 그래서 이런 과정을 설명하는 한문경의 모습에서는 ‘발명가’의 면모도 보인다.

어린 시절 한문경은 마림바의 소리처럼 통통 튀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음악을 할 거면 이왕 아주 독특한 악기를 해보라”는 어머니의 권유에 그녀가 잡은 것은 다름 아닌 마림바. 1998년 제1회 일본 마림바 콩쿠르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그랑프리상을 수상했고, 이후 여러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동시에 더 많은 레퍼토리를 선보이며 그 길을 걸어가는 중이다.

그런 그녀는 마림바를 두고 ‘현재진행형 악기’라 말한다. 악기와 작품이 서로의 발전을 자극하고 적극적으로 돕는다는 것. 특히 연주자 출신으로 악기 제작에 뛰어든 사람들이 상당수이며 자신만의 주법을 개발하면서 거기에 맞게 말렛을 개조하고, 더 나아가 악기를 개발하는 경우가 다른 악기와는 달리 매우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작품이 악기 개량에 영향을 주고, 그렇게 개량된 악기에서 영감을 얻어 새로운 주법이나 작품이 탄생하는 순환 구조가 ‘마림바 동네’에선 지금도 활발하다.

악기와 연주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서로를 이끌어주는 그 사이에는, 다른 이들은 결코 알 수 없는 마림바만의 무궁무진한 매력이 가득하다. 지금부터 한문경이 들려주는 마림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두들기는 피아노! 

‘초딩’ 시절 누구나 두들겨봤던 실로폰의 사촌쯤 되는 마림바. 그 앞에 서서 무수히 많은 막대(음판)들을 슬며시 들여다보면 피아노 건반과 동일한 방식으로 배열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피아노의 검은건반이 위, 흰건반이 아래에 있는 격인데, 건반 길이가 짧을수록 높은 소리를, 길수록 낮은 소리를 낸다. ‘마림바’라는 이름은 아프리카 반투어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는 ‘많은’, ‘림바’는 ‘각각의 건반’을 의미한다. 1910년 미국에서 처음 제작된 이래 연주자 겸 작곡가인 클레르 오마르 머서가 악기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처음에 제작된 마림바는 4와 1/3옥타브였으며, 현재는 5옥타브 마림바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마림바는 분해가 가능할까?

정답은 예스! “혼자 마림바를 분해하는 데 30분 정도 걸려요. 둘이 하면 시간은 반으로 줄죠.” 위아래 건반을 풀고, 건반 지지대를 접고, 파이프를 2~3등분으로 나눠 케이스에 담으면 마림바 포장이사 끝! 이제 다시 조립해보자.


▲ 1 건반 옮기기 하나의 줄로 연결된 건반들을 지지대 위에 살포시 올려놓는다.


▲ 2 둘 그리고 셋 윗줄의 경우 피아노의 검은건반처럼 2·3·2·3 구조로 위 건반의 위치를 잡는다. 예전에 참가한 어느 콩쿠르에서는 스태프가 건반 배열을 잘못 올려놓아 연주 중에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고.


▲ 3 끼우고 당기고 건반을 끼우고 줄을 당기고.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건반을 잡아주는 것이 조립의 포인트.


▲ 4 마무리 모든 건반이 다 자리 잡았다면 건반 한편 끝에서 줄을 힘껏 당기고 매듭을 지어 마무리한다.

말렛


마림바를 연주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 말렛(mallets)! 말렛은 크게 헤드(머리)와 스틱(몸통)으로 이뤄져 있다. “고무·실리콘·나무로 만든 헤드를 다양한 색상의 실이 감싸고 있죠. 헤드의 소재가 무엇인지, 실을 몇 번 감았는지, 얼마나 느슨하게 또는 빽빽하게 감겨 있는지에 따라 같은 건반을 치더라도 소리가 달라져요.” 집에 있는 털실이나 명주실로 감았나 싶은데, 아주 특수한(?) 실이란다. 실 색깔에도 유행과 패션(?)이 있다고. “취향에 따라 헤드에 직접 실을 감아서 사용하는 연주자도 있어요. 실 색상에 기준이나 규칙이 있을 것 같지만, 그런 건 전혀 없고요. 요즘엔 흰색이나 회색 같은 무채색 계열이 유행이랍니다.” 스틱은 주로 자작나무·단풍나무·대나무·등나무로 만들며 재료에 따라 탄성도 달라진다.


말렛 선택은 연주자 몫 



▲ 말렛

같은 작품을 연주해도 연주자가 어떤 말렛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느낌은 확연히 달라진다. “작곡가가 악보에 ‘단단한(hard)’ ‘중간의(medium)’ ‘부드러운(soft)’으로 말렛의 종류를 기보해놓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말렛을 갖고 연주할지, 악기 소리가 어떻게 날지는 예측 불가능합니다.”



마림바 건반 뒤에 숨겨진 비밀 

▲ 1

 

▲ 2

 

▲ 3


1 웬 낙서?
“악기 휴대가 쉽지 않다 보니 연주자들이 해외 투어를 할 때면, 자신이 평소 쓰던 마림바 브랜드를 현지에서 공수 받는 편이죠. 덕분에 제가 쓰는 말렛텍 브랜드를 몇 번 대여해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연주자들이 건반 뒤에 남겨둔 메시지예요.” 한문경의 마림바 전면부에는 새무얼 바버의 이름이 큼지막하게 휘갈겨 있다. 각기 다른 공연과 추억을 공유하는, 세상에 하나뿐인 악기인 셈.

2 조율은 어떻게 하나요?
스케이트보드 활주대를 연상케 하는 건반 뒷면. 건반은 대개 장미나무로 만들며 나무가 얼마나 깎이고, 곡선의 깊이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배음도 달라진다. 악기를 사용하며 음이 떨어지는 경우에는 나무를 깎아 조율해야 하는데 이때는 건반을 제조사로 보낸다고.

3 건반도 수리가 되나요?
보통 저음 건반은 두께가 두꺼울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저음 건반 또한 나무 두께가 얇아 크랙도 빈번하다고. “수리 비용이 만만치 않다 보니 처음엔 크랙이 없는 지점을 잘 피해서 연주해요. 도저히 못 버티겠다 싶을 때 수리를 맡기죠.” 사진 속 구멍과 덧칠한 부분이 수리의 흔적이다.

파이프도 스타일이다! 




음악회에서 오케스트라 가장 뒤편에 자리한 마림바를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파이프의 모양과 개수가 제각각이라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 5옥타브 마림바의 경우 건반이 61개지만, 파이프는 최대 70개까지 달려 있다. 이마저도 브랜드마다 다르다고. 한문경이 사용하는 브랜드는 야마하와 말렛텍. 야마하를 비롯한 대개의 마림바 파이프 밑은 완전히 밀봉(?)되어 있다. 하지만 말렛텍 일부 모델은 사진처럼 파이프 끝에 덮개가 있는데 이것을 파이프 안으로 밀어 넣었다 빼면서 파이프 안에 차는 공기의 양을 조절해 배음을 조절할 수 있다고 한다.


콘트라베이스 활 



현대음악 중에는 새로운 음향을 위해 말렛이 아닌 다른 도구(?)로 마림바를 연주하기도 한다. 이때 연주자는 지시에 따라 콘트라베이스 활을 사용해 건반을 문지른다고. 때로는 손으로 직접 건반을 치는 주법도 있다.


진짜 파이프, 가짜 파이프




“연주용 마이크를 간혹 파이프 아래에 갖다 대는 분들이 있어요. 악기 소리가 파이프 아래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파이프 밑면은 막혀 있죠. 건반 진동에 의한 공기가 파이프 아래로 내려갔다가 밑을 치고 연주자의 얼굴 쪽으로 올라오면서 소리가 울리는 원리예요.”

즉, 파이프가 없으면 공명이 없기에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의미. “겉보기엔 다 똑같은 파이프처럼 보이지만 위아래를 자세히 살펴보면 진짜와 가짜가 확연히 구분되죠. 건반 아래에 위치하면서 파이프 밑이 막힌 것이 소리를 내는 진짜 파이프, 밑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건 장식용입니다.” 
 
말렛 쥐는 방법

마림바 연주자들은 대개 한 손에 1~2개씩 말렛을 잡고 연주를 한다. 6개의 말렛을 사용하는 마림바 협주곡 ‘프리즘 랩소디’를 작곡한 게이코 아베처럼 연주자에 따라서는 한 손에 3~4개씩 잡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한 손에 3개씩 양손에 6개를 쥐면 움직임에 제약이 많아져 화성이 줄어들고 그만큼 곡의 다채로움은 떨어진다고.


▲ 전통 그립(traditional grip) 말렛 스틱 2개가 손바닥 안에서 교차되는 방식으로 A말렛이 B말렛 아래에 위치한다. 엄지와 검지로 말렛을 조절하며 화려한 기법을 구사하기 편한 것이 특징이다.


▲ 버튼 그립(burton grip) 재즈 비브라폰 연주자인 게리 버튼이 고안한 이 그립은 전통적인 그립과 달리 A말렛이 B말렛 위에 위치한 상태로 스틱이 교차된다. 넷째 손가락과 다섯째 손가락으로 조절하며, 동시 화음을 내기에 유리하다. 한문경은 버튼에서 변형된 그립을 사용한다.


▲ 스티븐스 그립(Stevens grip) 요즘 젊은 연주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그립. 말렛텍 브랜드 오너인 연주자 리 하워드 스티븐스가 고안했는데, 스틱이 교차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내 이름=브랜드!



마림바 연주자이자 작곡가로 유명한 게이코 아베. 마림바 동네에서는 그녀의 이름이 곧 브랜드다. 야마하는 일찍이 그녀의 이름을 걸고 5옥타브 마림바를 내놓았고, 말렛 스틱에서도 같은 이름이 흔하게 발견된다. “제조사마다 새로운 말렛들을 연주자들과 함께 내놓고 있어요. 연주자의 독특한 주법에 따른 새로운 말렛을 개발하고 거기에 맞춰 새로운 소리들도 빛을 보는 거죠. 게이코 아베의 말렛 시리즈는 10개가 넘어요. 스틱 부분에 브랜드명과 연주자 이름을 같이 기재되죠.”


악보에 따른 특수 주법

마림바는 악기·작품·주법이 서로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현재진행형으로 개발되고 진화하고 있다.



▲ 야-하 이-하 오-하 소리치기




▲ 스틱부분으로 건반치기


▲ 헤드로 건반을 지그시 눌러주기


글 김선영 기자(sykim@gaeksuk.com) 사진 이은비(studio BoB)


마림바가 매력적인 음반 | 에리크 사뮈트의 ‘Sailing In Seoul’ 



마림비스트이자 작곡가인 에리크 사뮈트의 세 번째 앨범이자 그의 제자인 한국인 연주자들과 함께 국내에서 기획하고 녹음한 음반이다. 파리 오케스트라의 수석 타악 주자이자 파리 국립음악원 교수인 사뮈트는 이 음반에서 마림바와 비브라폰을 비롯한 다양한 타악기들의 울림과 현악 앙상블의 조화를 감미롭게 만들어냈다. 사뮈트의 연주도 훌륭하지만 앨범에 참여한 한국인 타악 연주자들 또한 수준급이다. 특히 마림바 독주곡 ‘뱀의 꿈’에서 한문경의 연주는 사뮈트 못지않게 인상적이다. 녹음 또한 다양한 타악기의 음색을 특징 있게 재현하며 앙상블의 균형도 잘 잡아주고 있다.

글 최유준(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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