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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만난 디아나 담라우
디바의 인생은 사랑에서 시작된다
글 배윤미(파리 통신원) 9/1/2014 |   지면 발행 ( 2014년 9월호 - 전체 보기 )



‘밤의 여왕’은 ‘비올레타’로 영광스러운 인기를 누리게 됐다. 자신의 변화를 내다보고 영리하게 설계해 온 디바이기에 가능했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그녀의 삶과 음악은 사랑으로부터 시작된다




의상과 무대장치가 놓인 아틀리에를 지나 미로처럼 길게 이어진 파리 오페라극장의 복도를 따라 걸었다. 어렵게 도착한 분장실에는 소프라노 ‘디아나 담라우’가 있었다. 지난 6월 29일 ‘라 트라비아타’의 마지막 파리 공연을 준비하던 그녀를 만났다. 화장기 없는 건강한 얼굴에 유난히 푸른 눈동자를 반짝이던 그녀는 유머러스한 성격에 웃음도 많았다.

그녀의 남편은 바리톤 니콜라 테스테로, 둘은 두 명의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다. 테스테는 이번 공연에서 의사 역으로 출연했고, 덕분에 온 가족이 함께 머무를 수 있었다. 이들은 올가을, 바덴바덴에서 또 한 번 한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이제 ‘라 트라비아타’는 그녀의 대표 작품이 되어버렸다. 지난해 3월 둘째 아들을 출산한 직후 처음으로 비올레타 역을 맡아 현재까지 각기 다른 ‘라 트라비아타’에 출연하고 있다. 뉴욕을 시작으로 취리히·밀라노·런던·파리·뮌헨 무대에 올랐다. 다음은 그녀와의 일문일답이다.

비인간적이라고 불릴 만큼 어려운 역할인 비올레타를 강행군할 수 있는 비결이 있는가?

목소리가 성장할 수 있도록 오랜 시간 공을 들였고, 이제 목표치에 도달한 것 같다. 운동선수가 경기를 앞두고 트레이닝을 하듯, 나도 나의 목소리와 에너지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긴 시간 동안 배워왔다. 신기록을 깨기 위해 달리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유용하게 쓰기 위해 에너지를 배분한다. 요즘은 컨디션도 무척 좋다. 비올레타를 연기하는 데 최적의 조건이다.

지금까지 여러 제작진의 각기 다른 ‘라 트라비아타’에 출연했다. 어떤 점이 달랐나?

나의 첫 ‘라 트라비아타’는 메트로폴리탄에서 시작했다. 연출과 제작 모두 훌륭했다. 잘츠부르크에서 나보다 먼저 이 제작사와 공연한 안나 유리예브나 네트렙코와 롤란도 비야손 듀오의 노래도 들어봤다. 아주 좋았다고 생각했고, 내가 직접 작업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파리와 런던 공연은 클래식했고, 덕분에 비올레타의 감정에 가장 잘 몰입할 수 있었다. 특히 이번 파리 공연에서는 내가 생각하는 모습의 비올레타를 자유롭게 펼치도록 배려해주었다. 그럼에도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인 공연은 지난해 라 스칼라 무대다. 베르디의 해를 기념해 라 스칼라와 연출가 드미트리 체르냐코프가 이색적인 무대를 원했고, 나는 스트레스를 말도 못하게 많이 받았었다(웃음).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선보인 공연은 현대적 배경으로 각색된 것이었다. 빌리 데커의 연출은 어떠했나?

일주일간 빌리 데커와 연습을 하며 한 여성이 죽어가는 과정을 강하게 실감했다. 한 예로 이 작품의 무대장치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올레타가 죽어가는 것을 표현하는데, 미학적으로 아름답고 명료하다. 데커는 소파 하나를 중심에 두고 색감의 유희를 통해 극을 이끌어갔다. 붉은색에서 흰색으로 변하는데, 여기서 흰색은 한 점 티도 없이 순결한, 진정한 사랑을 의미한다. 그는 무대 위에 있는 모든 것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전한다. 결국엔 강렬한 감성을 만들어낸다.


▲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공연 중 담라우가 열연을 펼치고 있다 ⓒMetropolitan Opera

밀라노 공연에서의 비올레타는 아주 색달랐다고 들었다. 체르냐코프의 무대는 어땠나?

그 작품 속의 비올레타는 시작 전부터 지친 모습이었다. 기운도 없고 우울증에 걸려 있었다. 연출가가 ‘우울증’이란 단어를 쓴 것은 아니지만, 비올레타는 결국 그것 때문에 죽었다. 알프레도의 사랑이 크면 클수록 그녀의 고통도 강해졌고, 알프레도의 사랑이 폭발할 정도로 커진 순간 그녀는 죽었다. 사랑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열고 싶어 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후회는 강박처럼 그녀를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결핵으로 죽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병 때문에 죽은 것이다.

당시 혹평을 받았던 3막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3막에서 알프레도가 초콜릿과 꽃을 들고 비올레타를 찾아간다. 사랑이 아닌, 양심의 가책을 피하기 위해 온 것이다. 알프레도는 그녀와 아름답게 이별하려는 것이 아니라 ‘너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에만 급급했다. 이 부분이 문제가 됐다. 비올레타를 직접 연기하면서도 아주 힘들었다. 이제 희망이 없다는 감정이 음악을 통해서도 표현됐다. (직접 아리아의 한 소절을 부르며) 알프레도는 에너지에 찬 아리아를 부르지만, 비올레타는 둘 사이에 아무런 미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흥미로운 연출이었다.

비올레타의 추한 의상에 당신은 분노했다던데. 그런만큼 비난도 예상했을 것 같다.

공연 직전 비올레타의 의상을 보고 큰 충격에 휩싸였다. 어떻게든 그 의상들을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그럴 수 없었다. 연출가 체르냐코프는 의상을 통해 거대한 슬픔을 표현하고 싶어 했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좀 심했다. 비올레타의 의상을 추하게 만들지 않고도 비극적인 면을 강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배척하려는 그의 의도가 유감스러웠다. 체르냐코프에게 이렇게 하다간 혹평을 살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했고, 안타깝게도 결국 내 예상대로 되었다.

이번 브누아 자코 연출가와의 파리 공연은 고급스러움을 추구했다.

미니멀한 이미지가 마음에 들었다. 특히 나무를 표현한 방식이 좋았다. 생명감, 자연, 힘 그리고 사랑과 자유 등 모든 것이 무대에 펼쳐졌다. 특히 자신이 아픈 걸 알면서도 알프레도와 파리를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해보려는 비올레타의 마음가짐이 잘 반영됐다. 다만 ‘라 트라비아타’는 사적인 은밀함이 중요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파리 오페라극장의 무대가 너무 큰 것이 아쉬웠다. 개방된 공간이라 우리의 연기가 관객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았다.

침대 위로 머리를 박으며 떨어지는 마지막 장면은 아주 쇼킹했다.

우아한 임종 장면은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사실 그것은 리얼하지 않다. 코번트 가든 공연에서는 무대를 한 바퀴 돌고 알프레도에게 키스를 한 후 죽었고, 밀라노에서는 의자에 앉아서 죽었다. 그러나 자코는 인위적이지 않은 연출을 보여줬다. 충격적으로 표현되긴 했지만 리얼리즘이 살아 있었다. 침대가 딱딱한 편이라서 다치지 않으려고 주의했는데, 다행히 잘 마쳤다.

알프레도가 당신에게 돈뭉치를 던지는 장면에서는 정말 큰 소리가 났다. 다치지는 않았나?

아주 힘들었다. 통증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공연을 접을 수는 없었다(웃음). 다행히 다음 장면은 비올레타가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닌, 땅속으로 가라앉듯 푹 쓰러지는 장면이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이번 공연에서 알프레도의 연기력 논란이 있었다. 상대방의 연기에 영향을 받는 편인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이런 점에서 나의 직업은 아주 어려운 것 같다. 파트너와의 교감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연기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는 파트너와 함께하고 싶지만, 이는 기교적으로 뛰어나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다. 두 사람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와야 좋은 공연을 만들 수 있다. 때때로 새로운 감흥을 주는 파트너를 만나면 나도 새로운 것을 만들게 된다. 테너 프란체스코 데무로 같은 배우를 만나면 성장할 수밖에 없다.

평단의 반응에 신경 쓰는 편인가?

이따금 비평가들의 글을 보면 경악을 금치 못할 때가 많다. 청중의 반응을 떠올려보거나 동영상으로 다시 확인해도 비난의 이유가 없을 때가 있는데, 마치 권투를 하듯 ‘너도 했으니 나도 하겠다’고 열을 올리는 비평가들은 전문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열두 살 때 ‘라 트라비아타’를 보고 반했다고 들었다. 두 아이를 둔 어머니이자 성숙한 여인이 된 현재,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을 것 같다.

나에겐 마치 연인과도 같은 작품이다. 열두 살, TV를 통해 작품을 처음 봤던 그때와 똑같은 감정이다. 사회, 도덕, 종교는 비올레타를 진실할 수도, 자연스러울 수도 없게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비올레타는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그 시절의 여성은 학교에 갈 권리도, 성공을 꿈꿀 자유도 없었다. 태어난 상태로 신분을 유지하며 살아야 했는데, 그녀는 피아노를 배우며 교양을 쌓았고 사람들과 정치와 사회문제를 논할 수 있을 만큼 노력했다. 그녀는 비록 코르티잔이었지만, 오늘날의 일부 직업여성들과 비교할 수는 없다고 본다.

코번트 가든에서 데이비드 맥비커가 연출한 ‘마술피리’에서 밤의 여왕을 맡았던 당신은 정말 무서웠다. 무대 위 당신의 얼굴을 스스로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어렸을 때 유치원 발표회 같은 것을 하면 공주 역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매번 악한 역할만 했다. 밤의 여왕의 캐릭터 형성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가 싶다(웃음). 밤의 여왕의 표정은 내가 느낀 그대로의 감정일 것이다. 그녀는 권력을 차지하려는 야심에 찬 인물로, 심지어 자신의 딸에게 아버지를 죽이라고 강요하는 악독한 어머니다. 지금까지 밤의 여왕을 수없이 노래했지만, 이제는 부르지 않는다. 엄청난 집중력을 요하고 또 무척 조심스럽게 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중음에서 돋보일 수 있는 레퍼토리를 선택한다.

어린 시절의 꿈은 무엇이었나?

로큰롤 가수를 꿈꾼 적 있다. 청소년기에 누구나 한 번쯤 바라는, 그 정도 열정이었다. 강렬한 록 음악에 맞춰 춤추는 것에 사로잡혔고, ‘Bridge Over Troubled Water’ 같은 노래도 불렀다(웃음). 그러나 곧 나의 목소리를 위한 일이 아님을 알게 됐다. ‘라 트라비아타’를 사랑하게 된 후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포르테를 낼 수 있는 클래식 창법을 배우고 싶었다. 고음부터 저음까지 여러 음역을 오르내리는 벨칸토를 소화하려 노력했다.

올해 출반한 음반 ‘포에버’는 기존의 레퍼토리와 다르다.

처음 에라토에서 오페라타 곡들로 녹음을 제안했을 때, 나를 위한 기회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데뷔 초에는 ‘My Fair Lady’ 같은 뮤지컬 음악을 부르기도 했고, 밤의 여왕 아리아를 부르기도 했다. ‘포에버’는 담라우의 ‘포에버’가 아닌 모두의 ‘포에버’를 의미한다. 이번 음반의 수록곡은 현재 취향이 아닌,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것 같은 영원한 선율이다. 특히 ‘My Fair Lady’는 아름다운 연극적 경험이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가장 좋은 청중으로 당신의 아이들을 지목했다는데…

첫아이인 알렉상드르는 이따금 내게 ‘엄마는 노래를 참 잘해!’라고 말한다. 사실 내가 노래를 부를 때 아이들은 가장 좋은 테스트 상대가 돼준다. 가령 ‘헨젤과 그레텔’을 부를 때 나는 어른이 아이를 흉내 내는 것 같이 하고 싶지 않아서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연기를 하는데, 아이들은 그런 나를 진짜 그레텔로 바라봐준다.

첫아이가 악기에 대한 지식이 많다고 들었다.

알렉상드르는 한 살 때부터 악기를 구별했고, 이제는 지휘도 하려고 한다. 내가 두 팔로 첼로 켜는 흉내를 내면 그는 첼로라고 정확히 집어낸다. 또 휘파람을 불면서 ‘후후’ 하면 플루트를, 오보에의 앵앵거리는 소리를 따라 ‘띠라 띠라’라고 말하면 오보에를 지목한다. 아이들 모두 음악을 좋아한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오는 9월에 잔안드레아 노세다 지휘자와 함께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새 앨범 ‘벨칸토의 태양빛(가제)’을 작업할 예정이다. 두 아이를 출산한 후 목소리와 신체 모두 변했다. 나에게 벨칸토는 뛰어난 테크닉을 사용해 균형 있는 목소리로 피아니시시모에서 포르티시시모까지 자연스럽게 부르는 것이다. 화려함만이 전부가 아닌, 상황과 감정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수준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음반을 통해 태양처럼 찬란한 벨칸토의 비밀과 매력을 선사하겠다.


▲ ⓒMetropolitan Op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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